트위스티드 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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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의 달인
트위스티드 페이트
빌지워터


배경 스토리

트위스티드 페이트 - 카드의 달인“잃을 염려가 없다면 도박이 아니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정을 붙이는 법이 없다. 미움받는다는 게 어떤 건지 일찍 깨우쳤기 때문이다. 강을 따라 흘러다니는 바다뱀 유랑민이라는 건 이유 없이 따돌림을 당한다는 의미였다. 어릴 때 배운 유랑민의 카드 기술은 지금의 악명 높은 도박꾼 트위스티드 페이트를 키워냈다. 그의 기술은 사람을 홀린다. 부자도 멍청이들도 혀를 내두르며 넋을 놓고 만다. 자신만만하면서도 태평한 트위스티드 페이트에게 진지하고 심각한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항상 손안에 있으니까.

사람들은 바다뱀 유랑민의 이국적인 물건에 끌렸다. 하지만 그들의 사는 방식이 이상하다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알록달록한 유랑민의 범선은 정박하는 곳에서 결코 환영받지 못했다. 어른들은 받아들이라고 할 뿐, 사람들의 따돌림과 배척에 맞서 싸우는 법이 없었다. 어린 그의 마음에 운명을 순순히 끌어안는 어른들의 모습은 큰 상처로 남았다.

유랑민의 천막촌에서는 늘 도박판이 벌어지곤 했는데, 어느 날 밤 돈을 잃은 사람들이 술에 취해 들이닥쳤다. 이들은 유랑민을 욕하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배로 쫓아냈다. 하지만 취객들이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가족에게까지 손을 뻗치자, 그는 곤봉을 빼앗아 맞서 싸웠다.

폭력에 맞서는 것은 유랑민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보복에 대한 처벌은 하나뿐이었다. 추방. 어린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정박지에 혼자 남겨졌다. 멀어져 가는 배의 꼬리가 점점 짧아지더니 수평선으로 사라져 갔다. 가족을 지켜낸 건 자랑스러운 일이지 않은가. 그런데 부족 사람들이 등을 돌리다니.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믿을 수가 없었다. 마음속에서 따뜻한 불꽃 같은 것이 사그라들었다. 난생처음 혼자가 된 것이다.

이 마을 저 마을 발길 닿는 대로 떠돌아다녔다. 도박판을 찾아다니며 카드 게임으로 돈을 벌어 살아남았다. 잘난 척하는 사람, 잔인한 사람들의 돈을 빼앗는 재미도 알게 되었다. 일부러 몇 판은 져주기도 했다. 하지만 곧 돈을 잃어 화가 난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그레이브즈를 처음 만난 순간 마치 같은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듯, 서로가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둘은 여러 해 동안 발로란을 휩쓸고 다녔다. 도둑질이면 도둑질 사기면 사기,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다. 점점 더 위험한 방법으로 판을 짜는 재미에 빠지게 되었다.

끝도 모른 채 모험에 빠져있던 트위스티드 페이트와 그레이브즈의 행보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한탕 크게 벌이려던 일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도망쳤지만 그레이브즈는 생포되고 말았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어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다. 재기하기 위해 본명은 버려야만 했다. 이제 상처 입은 어린 소년은 없다. 오직 트위스티드 페이트라는 이름의 한 남자가 있을 뿐.

그때부터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가는 도시마다 도박으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그 돈을 대체 어디에 쓰는지, 왜 그렇게 돈에 미쳐 있는지 아무도 설명할 수 없다. 잘 차려입은 말쑥한 옷차림 외에는 어디에도 돈을 낭비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체포됐단 소식은 몇 번이나 세간의 화제가 되었으나, 세상 어디에도 그를 잡아 가둘 수 있는 감옥은 없었다. 다음 날 아침이면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남겨진 건 조롱하는 듯한 카드 한 장뿐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빌지워터에서 그레이브즈를 맞닥트렸다. 하지만 해일처럼 덮쳐오는 죽음의 전투 속에서 갱플랭크를 피해 함께 탈출하게 된 두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결판을 낸다. 오랜 오해를 털어내고 다시 동료가 되기로 한 것이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를 추적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다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공기 속으로 홀연히 사라지기 일쑤였으니까. 눈 깜짝할 사이 금화를 훔치기에 알맞은 기술이다.

반짝이는 행운 도박장에서 사람들은 트위스티드 페이트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는 부러움과 대리만족감도 있었지만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빈털터리가 되기를 심술궂게 바라는 마음 또한 컸다.

주변을 둘러보지 않아도 올가미가 목을 서서히 죄어오는 것처럼 이상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카드들이 경고하듯 파르르 떨렸다. 누군지 몰라도 추격자가 바짝 쫓아왔단 뜻이다. 어서 판을 접고 떠야 한다. 그러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박살 낼 기회를 놓치기는 너무 아까웠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상대를 향해 활짝 핀 꽃처럼 웃어 보였다. 광부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돈을 벌어들인 상인, 헨마였다. 헨마는 프렐요드 모피, 수제가죽, 빌지워터의 바다 부적 등 아주 비싼 것들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또한, 손에는 평범한 사람은 평생 구경도 하기 힘든 값어치의 금반지를 열 손가락 마디마디에 뽐내듯 끼고 있었다. 탁자 위에 수북이 쌓인 금은보화와 문서 더미 위로 수제 파이프의 향긋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상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헨마님 차례인 걸로 아는데요.”

“이 쥐새끼 같은 놈, 규칙은 나도 알아.” 헨마가 말했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문신이 새겨진 손가락으로 자신의 카드 뒷면에 소용돌이 모양을 끝없이 그려댔다. “화려한 손재주로 주의를 끄는 건가? 나한테 뭔가 얻어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고.”

“주의를 끌다뇨?” 트위스티드는 자신감 있고 세련된 몸짓으로 말했다. “맹세컨대 그런 저급한 수를 쓸 정도로 비열하진 않습니다.”

“아니라고? 근데 왜 자꾸 눈을 굴리는 거지?” 헨마가 연기를 내뿜으며 손을 저었다. “똑똑히 들어. 나는 최고의 꾼들을 상대해왔다. 네놈들의 표정만 봐도 무슨 속셈인지 다 알아.”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빈정거리며 카드를 섞었다. “나리가 예리하시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그리곤 모자를 벗어 연극배우처럼 인사를 했다.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눈은 군중들 위로 한 바퀴 원을 그렸다. 늘 그렇듯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싶어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눈에 띄는 인물들이 있었다. 카드가 좀 전보다 더 심하게 떨렸다. 입안에서 구역질이 날 것처럼 쓴맛이 났다. 이건 곧 소동이 일어날 신호다.

도박장 한 구석, 안대를 한 남자와 붉은 머리 여자의 허리춤에 총이 얼핏 보였다. 트위스티드 페이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인가? 헨마의 재산을 지키는 자들인가? 헨마가 부하들을 데리고 왔으면 숨겨두지 않고 과시했을 거다. 그럼 현상금 사냥꾼이군. 손안의 카드가 쉬지 않고 떨고 있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카드를 모아 탁자 위에 늘어놓았다.

“표정 관리도 안 되나? 잃은 티가 너무 나잖아.” 헨마가 말했다. 모두를 깔보며 살아온 사람의 말투였다.

“그렇다면 좀 더 재미있게 해보실까요, 나리?”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부채꼴 모양으로 카드를 펼쳤다. 추격자들이 가까워지고 있다. “판돈을 두 배로 올리시죠.”

“네놈이 그만큼 걸 돈이나 있어?” 헨마가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얼마든지요.”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헨마를 똑바로 바라보며 코트 주머니에서 두둑한 금화 주머니를 꺼냈다. “나리는요?”

헨마는 입맛을 다시며 재빨리 손짓했다. 뒤에 서 있던 하인이 돈주머니를 건넸다. 탁자 중간에 쌓여 있던 금은보화에 돈이 더해지자 구경꾼들이 나지막한 탄성을 질렀다. 지금 걸린 판돈보다 훨씬 적은 돈에도 수많은 목숨이 오갔으니까.

“네 패를 먼저 보여라.” 헨마가 말했다.

“그러죠.”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카드를 뒤집는 순간. 현상금 사냥꾼들이 움직였다.

안대를 한 남자가 올가미를 던졌다. 여자는 쌍권총을 꺼내 들며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이름을 외쳤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발로 차 탁자를 뒤집었다. 공중에서 금화, 카드, 양피지가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쌍권총이 굉음을 내며 탁자에 주먹만 한 구멍을 냈다. 딸각 올가미가 채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욱한 연기로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비명이 잦아들고 연기가 걷혔을 때는 이미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사라진 후였다. 카드와 종이쪼가리 사이에서 사람들은 금화를 찾아내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헨마가 벌떡 일어났다. 두리번거리더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부서진 탁자 조각 사이로 손을 뒤적이던 헨마가 창백한 분노 속에서 외쳤다.

“돈. 내 돈! 어디 갔어. 내 돈!”

어지럽게 흔들리는 행운 도박장의 빛 속에서 다섯 장의 카드가 펄럭이며 헨마 앞에 떨어졌다.

이기는 패였다.


배경 스토리(예전)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부러운 남자다. 비록 가난한 집시 집안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출신은 그에게 그 어떤 방해도 되지 않았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데마시아녹서스의 불법 도박장을 넘나들며 카드 사기를 쳤고 큰 돈을 벌게 되었다. 게다가 운은 또 대단히 좋아서 위기가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에서도 어찌어찌 탈출할 수 있었다. 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경찰의 수사망을 매번 그토록 유유히 빠져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돈도 많고 운도 좋고 남부러울 것이 없었던 그에게도 어릴 때부터 갈망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마법 조종의 힘을 손에 넣는 것이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품고 살아가던 어느 날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자운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마법 실험을 시행한다는 것이 아닌가?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타고난 도박사답게 누구보다 먼저 실험 대상으로 자원하고 나섰다. 악명 높은 재비어 라스 박사의 실험체가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도박이었다. 박사도, 실험대상도 그 어떤 것도 예상할 수 없었다. 모든 게 송두리째 바뀔지도, 바뀌지 않을지도, 최악의 경우엔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반드시 고통이 따르게 될 건 뻔했다.

하지만 이런 것쯤은 트위스티드 페이트에게 있어선 고난 축에도 끼지 않았다. 그는 마법의 힘에 대한 갈망으로 실험의 모진 고통을 전부 이겨냈다. 그러나 실험은 아무 효과도 없이 무의미하게 끝나버렸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지독한 허탈함과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길길이 날뛰면서 연구원들을 해치우려는 찰나,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험실에서 수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 순식간에 이동해 버렸다. 행운의 여신이 또 한 번 자신의 편에 섰음을 깨달은 그는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전쟁 학회에서 타고난 운과 난봉꾼다운 매력을 한껏 뽐내며 특히 도박꾼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라스 박사와의 재회만은 극구 피하고 있지만, 트위스티드 페이트 자신도 박사와의 만남을 언제까지나 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른 이들에게 미래란 불확실한 것이지만,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자신의 미래가 카드 속에 있다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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