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톨루스 반란(DIABLO)

카르톨루스 반란
시작 13세기
종료 13세기
장소 서부원정지, 성역
결과 유스티니아누스 왕조의 승리
측면 1 서부원정지 충성파
측면 2 서부원정지 반란군
지휘관 1 유스티니아누스 3세
코르넬리우스
지휘관 2 티라 황제

> "우리는 카르톨루스 반란 같은 사태가 재현되는 것을 원치 않네." — 토리온 장군, 《거미의 달》

카르톨루스 반란(Cartolus Insurrection)서부원정지 내에서 일어나 내전으로 번진 봉기였다. 이 사건은 13세기 어느 시점에 발생했다.[1]

역사

기원

이 반란의 기원은 라키스의 손자인 코렐란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 코렐란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서부원정지의 왕위는 여러 세대 후에 압드 알하지르가 "자카룸 성전에 대한 다소 복잡한 해석"이라고 묘사하게 될 과정을 거쳐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게 넘어갔다. 그렇게 유스티니아누스 왕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유스티니아누스 가문을 찬탈자로 여겼고, 그들은 통치 내내 끊임없는 도전에 시달렸다. 마침내 유스티니아누스 3세의 치세에 카르톨루스 외곽 지역에서 본격적인 반란이 발발했다. 라키스의 아들들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티라라는 여성이 이끈 이 봉기는 곧바로 귀족과 자카룸의 엄격한 규율에 대항하는 평민들의 전쟁으로 간주되었다.[2]

전쟁의 경과

줄리아 백작부인유스티니아누스 3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친위대를 동원해 반란을 진압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친위대는 몰살당하고 봉기가 확산되면서 이 노력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백작부인은 마법이 깃든 카메오 덕분에 이 어리석은 행동 속에서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왕의 진노를 피할 수는 없었기에, 유스티니아누스 왕은 그녀를 고문한 뒤 처형했다.[3]

봉기는 농민들이 서부원정지의 왕궁을 습격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농민들은 손에 잡히는 대로 무기를 집어 들고, 왕실 수행원 중 가장 억압적이었던 자들(처형인 포함)을 살해했다.[4] 티라는 서부원정지의 통제권을 장악하고 스스로 황제를 자처했다. 그러나 그녀의 통치도 내전을 진정시키지는 못했고, 결국 그녀가 광기에 빠져 역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내전은 지속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3세의 손자이자 자카룸의 하수인인 코르넬리우스는 이 틈을 타 반군을 완전히 진압하고 새로운 왕이 되었다.[2]

여파와 유산

반란의 여파는 그 끝 이후로도 오랫동안 남았다. 코르넬리우스가 죽고 왕위가 유스티니아누스 4세에게 계승되자, 토리온 장군은 어린 왕에 대한 지지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반란의 재발을 경계했다.[5] 반란의 역사는 유스티니아누스 4세가 즉위한 후 어느 시점에 압드 알하지르에 의해 《서부원정지의 역사》에 기록되었다.[2]

1285년, 수확자들이 서부원정지를 황폐화시키자 역사는 다시 한번 반복되었다. 코렐란의 외손자인 윈턴 경은 오랫동안 왕실에 반기를 들어왔던 인물이었다. 수확자들이 백성들을 도살하는 와중에 윈턴은 유스티니아누스를 살해했으나, 곧바로 네팔렘에게 처단당했다.[6]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