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조차 닿지 않는 깊은 심연. 그 주변으로는 수십 개의 다른 터널 입구들이 뚫려 있었다. 모두 한때는 지표면 깊은 곳의 암반이었으나, 지금은 깎여 나가고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한때 이곳은 거대한 공허 생명체 군락의 보금자리였다. 이들의 굴은 만들어지지 않은 물질의 무작위성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날카로운 모서리, 막다른 길, 겹겹이 꼬인 통로들... 그 모든 것은 '세상을 먹어치운다'는 목적 외에는 아무런 계획 없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공허다.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싸우고, 포식하며, 현재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무지성 유기체 기계들. 카이사는 이 생명체들에 대해 그 이상은 없다는 것을 알 만큼 충분히 그들을 죽여왔다.
하지만 카이사가 서 있는 터널은 달랐다. 무작위로 파괴된 흔적이 아니었다. 거의 북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있었고, 그녀는 지난 4일 동안 이 길을 따라왔다. 이 터널, 이 통로는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다. 목표가 있었다. 말이 되지 않는다...
카이사는 이 통로가 어디로 향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이 모든 것을 납득할 수 있게 만들 작정이었다.
지금까지 길은 이 심연으로 이어져 있었다.
카이사는 반대편 입구들을 훑어보았다.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지금 서 있는 통로의 일부가 저 중 하나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녀가 어깨를 돌리자, 살아있는 갑옷이 깨어나며 그녀의 피부를 단단히 감쌌다. 갑옷은 어린 시절부터 그녀와 함께 자라온 유일한 동반자였다. 그녀의 가족과 마을을 몰살시켰던 공허 생명체 중 하나였던 그것. 갑옷을 두른 카이사는 영락없는 괴물로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 없이는 공허로부터 세상을 지킬 수 없었다.
갑옷이 없다면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깨의 비늘 모양 돌기가 꿈틀거리고, 내장된 수정이 빛을 내며 첫 번째 목표를 조준했다. 수정에서 나오는 열기가 공허 플라즈마 미사일을 생성했고, 그녀는 그것을 심연 아래 터널 입구를 향해 발사했다. 심연을 건너는 데 6초가 걸렸다. 거대하군. 1초 뒤, 미사일이 곡선 구간에 부딪혔다. 아니, 찾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서부터 조준과 발사가 반복되었다. 대부분의 미사일은 1~2초 만에 무언가에 적중했다. 하지만 카이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었다. 그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이 일을 끝낼 생각이었다.
해가 질 무렵, 마침내 찾는 터널을 발견했다. 그녀는 미사일이 심연을 건너길 기다리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이거다. 이쪽이 통로의 반대편 끝이야.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입구 주위를 표시하기 위해 연사했다. 앞서 쏜 미사일은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무언가에 부딪히며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어깨 돌기를 안쪽으로 돌려 빛을 숨겼다. 먹잇감이 나타나길 조용히 기다렸다.
또다시 들려오는 비명. 통로 반대편에서 공허 생명체가 나타났다. 카이사는 수년간 공허 생명체를 사냥하고 관찰하며 기록해 왔다. 이번 것은 처음 보는 종류였다. 미사일에 맞아 부상당한 생명체의 매끄럽고 둥근 몸체는 긴 아래턱을 벌리며 일그러졌다. 입 안은 위험한 각도로 튀어나온 반투명한 바늘 같은 이빨로 가득했다. 옆구리는 숨을 쉬는 것처럼 팽창하고 수축했다.
아니면 냄새를 맡는 건가. 생명체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생각했다. 눈은 없지만 나를 찾아낼 수 있어.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 그녀가 조준했다. 공허 생명체가... 빛나기 시작했다. 무언가—혀일까?—가 입 밖으로 나오며 희미한 푸른 빛을 발했는데, 마치 인간들이 광산에서 쓰는 램프와 비슷했다. 공허 생명체가 저런 짓을 하는 건 처음 봐. 그녀는 상처 부위도 함께 빛나고 있음을 알아챘다.
램프라이트(등불 생물)라고 부르지 뭐. 그녀가 미사일을 발사했다. 램프라이트의 자세가 바뀌었다. 녀석은 높고 길게 비명을 지르며 카이사의 공격을 피했다. 빌어먹을. 카이사가 다시 조준했다.
그 뒤의 터널 전체가 푸른 빛으로 만개했다. 수백 마리의 램프라이트가 첫 번째 녀석과 합류했고, 입을 벌린 채 혀를 치켜들고 빛을 뿜었다. 카이사는 심호흡을 했다. 더 나쁜 상황도 겪어봤다. 한곳에 모였군. 잘됐어. 카이사는 램프라이트 무리를 단번에 처치할 생각으로 연사를 퍼부었다.
미사일이 날아가는 동안, 녀석들은 마치 먼지처럼 쏟아져 나오며 심연의 벽에 달라붙었고 미사일은 무해하게 그들을 지나쳐 갔다.
뭐...
부상당한 램프라이트의 지휘 아래, 그들은 하나처럼 움직였다. 카이사를 향해.
...라고?
그녀는 손을 들어 무리를 향해 빠르게 사격했다. 몇 마리를 맞췄지만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녀석들은 이미 그녀와의 거리를 4분의 1이나 좁혀왔다. 카이사가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이곳에서 싸우거나, 왔던 길로 돌아가거나, 심연으로 뛰어내리거나, 아니면 기어 올라가서 지표면에서 싸우거나.
그녀는 위쪽을 쳐다보고는 무리를 보았다. 벌써 절반까지 다가왔다. 올라간다. 카이사는 지그재그로 바위를 네 번 쏘았다—손과 발을 딛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몸을 끌어올리며 등반을 시작했다.
쏘고, 잡고, 당기고. 쏘고, 잡고, 당기고. 카이사는 최대한 빠르게 경로를 만들었다. 어깨 돌기가 무리를 향해 발사되었다. 녀석들이 가까워졌지만 카이사의 속도도 나쁘지 않았다. 반 이상 올라왔을 때—
그녀의 손에 모래가 잡혔다.
다시 쏘아보았지만, 미사일이 박힐 암석이 없었다. 미사일은 모래를 뚫고 지나갔고, 빈 공간은 다시 모래로 채워졌다. 잡을 곳이 없다. 남은 거리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카이사는 이를 악물고 괴물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죽어야 한다면, 최대한 많은 놈들을 데려갈 생각이었다.
갑자기 괴물들 주변의 벽에 균열이 생겼다.
그리고 무너졌다.
수백 마리의 램프라이트가 돌덩이와 함께 떨어져 내렸고, 그들의 빛은 심연의 어둠 속으로 삼켜졌다. 오직 세 마리만이 카이사를 향해 돌진했다. 그 정도는 처리할 수 있다. 녀석들이 너무 가까워 혀의 가시까지 보일 정도였다.
세 발의 사격. 램프라이트 두 마리가 추락했다. 하나 남았다.
녀석이 가시 돋친 혀를 휘둘러 카이사의 갈비뼈 쪽을 강타했다. 갑옷 아래에서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고, 그녀는 암벽에 세게 부딪혔다. 갑옷이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견뎠다. 왼손으로 벽을 지탱하고, 오른손으로 괴물의 혀를 가시 바로 아래에서 꽉 움켜쥐었다. 보라색 에너지가 솟구쳤다. 램프라이트의 혀가 그녀의 손 주위에서 녹아내렸다. 비명을 지르며 녀석이 뒤로 물러났다. 카이사가 조준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다.
좋아. 카이사가 숨을 골랐다. 좋아. 다음 단계. 지표면으로 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때 모래 밖으로 튀어나온 돌덩이 정육면체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는 없었는데. 카이사가 손을 뻗어 잡았다—손에 딱 맞는 크기였다. 체중을 실어 시험해보니 버틸 만했다. 호기심이 생긴 그녀가 몸을 한쪽으로 기울여 위쪽을 살폈다. 팔을 뻗을 때마다 하나씩 이런 돌덩이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이 행운에 대한 의문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카이사는 돌덩이를 하나씩 밟고 올라가 밖으로 나갔다. 달빛 아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랜드마크는 보이지 않고 모래 언덕과 바위 절벽뿐이었다. 멀리서 모래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녀가 심연을 내려다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자 희미한 빛이 보였다...
바람 소리가 거세졌다. 폭풍이 빨리 다가오고 있어. 그녀가 폭풍을 향해 몸을 돌렸다. 폭풍의 중심에 있는 것은...
여자아이?
카이사의 발밑에서 땅이 폭발했다. 그녀는 부러진 갈비뼈를 감싸 쥔 채 폭풍을 향해 공중으로 날아갔다. 공중에서 자세를 바꾼 그녀는 어깨 돌기를 방패처럼 앞세웠다. 습격자가 자신을 끌어당기려 한다면 그것은 큰 실수일 터였다.
무언가가 그녀의 어깨 돌기와 손목을 감싸더니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갈비뼈가 불타는 듯했고, 머리가 땅에 닿으며 투구가 금이 갔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손목을 강제로 벌렸다. 보석이 박힌 붉은 스카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짐승 같은 고함과 함께 그녀의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소녀의 얼굴에 나타난 놀람과 공포의 표정을 보고 카이사는 멈칫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괴물로만 여기는 모습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다.
이겨내, 카이사. 그녀는 다시 손을 치켜들고 공격할 준비를 했다...
“당신... 사람이에요?”
카이사는 깨진 투구 틈으로 소녀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당신... 내가 보여요?” 상관없어. 사람들은 카이사가 같은 인간인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항상 그녀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소녀의 표정은 카이사에게 어리석은 희망을 품게 했다. 이번은 다를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투구를 벗어던지자 그녀의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음, 맞아요.” 소녀가 심연을 가리켰다. “이런 붕괴 사고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드무니까요.” 소녀는 카이사의 두 번째 피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인간처럼 보이지도 않고요? 처음 봤을 땐.”
생각보다 어린아이는 아니었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나이가 많아 보였다. 소녀가 보석 박힌 스카프 끝을 이용해 모래에서 무언가를 들어 올리자 카이사가 멍하니 바라보았다. “돌들,”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돌을 다룰 줄 아는구나.”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스카프가 마법처럼 목에 감겼다. “네가 아까 그 모래 속 정육면체들을 만든 거였어.”
소녀는 미소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 괴물들이랑 같이 아래에 누군가 있는 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도우려고 했죠.” 그녀의 미소가 사라졌다. “몇 주 전부터 계속 그래왔어요. 몇 달인가? 기억하기 힘드네요.”
카이사가 눈을 깜박였고, 눈가가 따끔거렸다. 공허와 싸우는 사람이 또 있었어. 그녀가 깨달았다. 내 방식이랑은 다르지만... “너는 누구지?”
탈리야의 캠프에 들어서자 춤추는 모닥불이 두 여인을 반겼지만, 카이사의 시선을 끈 것은 고기 굽는 냄새였다. 탈리야가 사람들에게 괴물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미리 경고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웠다. 물론 누군가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리는 그녀의 갑옷을 보면, 탈리야를 탓할 일도 아니었다.
옷감 쪼가리와 단단한 바위 판으로 얼기설기 만든 텐트들은 탈리야의 솜씨 같았다. 30~40명 정도 되는 아이들과 노인들이 캠프 중앙의 커다란 화덕을 둘러싸고 있었다. 말없이 크게 뜬 눈으로 어깨를 웅크린 채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 익숙했다.
공포. 카이사는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않았다.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야. 하지만 사실은 그녀 자신을 위해서였다.
탈리야는 팔을 활짝 벌려 카이사를 소개하며, 그들의 만남을 극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군중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은 불꽃뿐이었다. 탈리야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돌아온 것은 정적과 침묵뿐이었다.
“안 머물러도 돼.” 카이사가 중얼거렸다.
탈리야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부상당했잖아요. 먹지도, 쉬지도 못한 당신을 다시 저기로 보낼 순 없어요. 안 돼요.”
카이사 키의 절반 정도 되는, 붉은 두건을 어깨에 두른 아이가 일어섰다. “진짜 인간 맞아?” 아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냥 변장한 거 아냐?” 아이는 자신을 잡아당기는 더 큰 소녀들 때문에 거의 뒤로 넘어질 뻔했다.
탈리야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을 줄 아는 공허 괴물을 본 적 있니, 사미르?” 그녀가 대꾸했다. “난 없는데.”
모두가 기대에 찬 눈으로 카이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최대한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게 입을 꾹 다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들이 겁먹지는 않은 모양이다. 승리였다.
사미르라는 아이가 다시 일어섰다. “뭐, 알겠어,” 아이가 카이사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내 모래뱀 고기 좀 먹을래?”
카이사가 음식을 받자 다른 사람들도 안도하는 듯 보였다. 그녀는 꼬챙이에서 고기를 뜯어 씹지도 않고 삼켰고, 갑옷이 안도의 가르랑거림을 냈다. 자이파, 머리에 옥 구슬을 꿴 큰 소녀가 음식을 더 건넸다. 이번에는 시나몬과 신 레몬, 스모키한 울-타와트 열매의 풍미를 느낄 정도로 천천히 먹었다.
그 맛은 그녀의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 모닥불 위에서 아버지가 요리하고 어머니가 절구로 울-타와트를 빻던 옛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카이사는 머리를 저어 생각을 떨쳐냈다—그 기억에 머물러봐야 좋을 게 없었다. 더 이상 먹을 필요는 없었고, 갈비뼈가 아물기 시작할 정도로 충분히 먹었다.
하지만 캠프는 이미 사람들의 대화와 함께 긴장이 풀려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녀에게 등을 돌리기까지 했다. 신뢰의 표시였다. 그리고 탈리야의 눈에 서린 희망은 분명했다. 가지 마세요, 제발. 그들의 눈빛이 말하는 듯했다. 아직 우리를 떠나지 말아요.
“잠시 머물지.” 그녀가 양보했다. “치료될 때까지만.”
내일이 되어도 통로는 그 자리에 있을 테니까.
밤이 지나도록 카이사는 음식과 이야기들을 즐겼다. 모두가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자신들의 집이 모래 속으로 사라진 이야기, 부모와 형제를 그리워하며 곧 다시 만나길 바라는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죽었어. 내 가족처럼 공허에게 살해당했지. 카이사는 생각하는 바를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어떤 노인들은 태양의 축복을 받은 초월체 전사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른 이들은 마지막 황제와 그의 죽음 뒤에 찾아온 혼돈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이파는 초월체를 타락시켜 광기와 악으로 몰아넣은 어둠에 대해 설명했다. 어느 것도 믿기 힘들었지만 카이사는 귀를 기울였다.
바위로 만든 팔 보호대를 한 큰 소녀, 카디라가 들려준 이야기는 단연코 가장 허황된 것이었다. 그녀는 사이 칼리크 건너편에 있는, 수천 년간 마법의 보호를 받아온 '졸란'이라는 곳에 대해 말했다. “낙원이라 불리는 곳이죠,” 그녀가 한숨 쉬었다. “도서관과 정원, 끝없이 흐르는 물이 있는 곳이요. 모두가 두려움 없이 안전한 곳이죠.”
카이사는 자신이 비웃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카디라와 아이들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공허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어,” 카이사가 말했다. “특히 사이 칼리크 근처라면 더더욱. 그건 신화일 뿐이야.”
“실재해요,” 카디라가 고집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카이사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이야기꾼들을 남겨두고 자리를 떴다.
달빛에 비친 텐트 하나에 기대어 자이파, 사미르와 대화 중인 탈리야를 발견했다. 자이파가 펼쳐진 두루마리를 손가락으로 짚고 있었다.
“정말로 이 졸란이라는 곳을 찾으러 가는 건 아니지.” 카이사는 의문문이 아닌 확신으로 말했다. “허황된 이야기 때문에 사이 칼리크를 건너며 스스로 위험에 뛰어드는 꼴이야.”
탈리야가 자이파와 눈빛을 교환했고, 자이파는 카이사에게 슈리마 동부의 지도가 그려진 두루마리를 건넸다. 그녀가 사이 칼리크 북쪽의 한 점을 가리켰다. 졸란. 북쪽. 통로가 향하던 방향과 같아. 카이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 사람들에게 안전을 찾을 최선의 기회예요,” 탈리야가 설명했다. “집은 파괴됐고, 가족들은... 흩어졌죠. 사람들에게는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이 필요해요.”
“거짓 희망은 아무 도움도 안 돼. 공허 앞에서 유일한 방법은 도망치고 자신이 빠르길 기도하는 것뿐이야.”
탈리야가 고개를 저었다. “사이를 돌아가면 식량이 떨어질 거고, 그대로 있으면 역시 식량이 떨어져요. 돌아가 봐야 파괴된 마을들뿐이죠. 어디로 또 도망쳐요?”
“아니. 졸란은 이야기일 뿐이야,” 카이사가 말했다. “제르사이는 실재해. 예전에도 수없이 많이 싸워봤어. 여기는 그들의 둥지야. 건너려는 시도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어.”
“저도 공허 생명체와 싸워봤어요. 제가 당신을 구한 건 잊으셨나요?”
“그건 제르사이가 아니었어.”
“무엇이었든 간에, 당신이 못 할 때 제가 물리쳤잖아요.” 탈리야의 턱에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 “졸란이 유일한 희망이라면, 저는 그곳으로 모두를 이끌 거예요.”
“게다가 계획도 있어요,” 사미르가 신나서 말했다. “탈리야가 모래 위에 다리나 벽 같은 걸 만들면, 우리가 사람들을 데리고 건널 거예요.”
공허가 나를 앗아갔을 때 내 나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카이사가 쏘아붙였다. “뭐, 너도 돌을 움직일 수 있나?”
“난 너보다 훨씬 뛰어난 바위술사야,” 사미르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샌드보드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괴물은 없어. 놈들이 덤비면?” 아이가 땅에서 무언가 솟구치는 시늉을 했다. “탈리야가 '바위 폭발'로 놈들을 쫓아낼 거야.”
“애 같은 소리 하네,” 카이사가 뱉었다. 사미르의 미소가 사라졌다. “렉사이의 아이들... 놈들은 오직 포식만 해. 앞을 가로막는 건 뭐든? 다 사라지지.” 그녀가 가까이 다가갔다. “놈들이 너희 소리를 들으면, 사냥을 시작해. 뼈를 으스러뜨릴 때까지 멈추지 않아.”
“애를 겁주지 마세요,” 자이파가 사미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좋아. 그래야지.”
“그러니 우리와 함께 가요,” 탈리야가 당당하게 말했다.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걸 도와주세요.”
“안 돼. 너희는 가지 않을 테니까.” 카이사가 사미르를 가리켰다. “아이들을 그런 위험에 빠뜨려선 안 돼. 죽을 거야. 사이를 돌아갈 방법을 찾아.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데려가. 느린 애들은 남겨두고, 그들의 배급량으로—”
“안 해요!” 사미르가 카이사와 맞서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탈리야가 우릴 보호할 거예요. 내가 우릴 보호할 거라고요.” 사미르가 가슴을 폈다. “난 이 사람들을 도울 거고, 모두 다 건너갈 거예요. 왜냐면... 그들의 삶 하나하나가 의미 있으니까요.” 아이는 자이파의 뒤를 따라 화덕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게 유일한 기회야,” 카이사가 조용히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 모두를 죽음으로 내모는 꼴이야.”
“아니요.” 탈리야가 카이사 앞을 막아섰다. “우리 세상은 하나의 태피스트리예요. 모든 생명은 각기 다른 색의 실이죠. 하나하나가 모여 전체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거예요.”
윽. 비유라니. “그렇다면 공허는 불길이야,” 카이사가 대답했다. “닿는 모든 걸 파괴하지. 네 태피스트리에 불이 붙으면 전부 타버릴 거야... 불타는 실을 잘라내지 않는 한. 그러면 최소한 대부분은 구할 수 있지.”
“당신은 틀렸어요. 어떤 실이든 떨어져 나가면 전부 불안정해져서 쉽게 풀려버려요.” 지평선에 햇빛이 나타났고, 탈리야의 눈이 금빛으로 빛났다. “저는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낮 동안 캠프는 잠들었다. 카이사는 일몰 몇 시간 전에 일어났다. 사람들은 짐을 꾸리고 길을 떠날 준비를 했다. 아이들은 납작한 빵과 치즈를 나누어 주었다. 한 아이가 카디라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수줍게 그 큰 소녀에게 “무서운 언니”에게 음식을 가져다줄 수 있느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탈리야는 돌 구조물들을 땅으로 돌려보냈고, 그곳에 있었던 흔적은 거의 남지 않았다. 카이사는 빵을 조금씩 뜯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마음을 바꾸고 우리와 합류하기로 한 건 아니겠죠?” 탈리야가 물었다. 카이사는 탈리야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보았다. 내색하는 것보다 훨씬 지쳐있군.
“아니. 가야 할 곳이 따로 있어.” 그녀가 한숨 쉬었다. “그리고 너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군.”
탈리야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가야 할 곳이 있으니까요.” 그녀가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실망이네요. 당신은 공허 괴물을 다루는 법을 알잖아요. 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텐데.”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 공허 통로를 만든 게 무엇인지 알아내는 거야.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어... 그게 두려워. 하지만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너 스스로 사람들을 잘 도울 수 있길 바라.”라고 말했다.
통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일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근데 이제 외로운 기분이야. 카이사는 탈리야와 너무 오래 머물렀던 건 아닌지 고민했다. 그녀는 삶의 절반 이상을 혼자, 지표면 아래 사는 공허 괴물들과 함께 보냈다. 다시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몰랐다.
생각에 잠긴 채 걷다 보니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몰랐다. 곧, 그녀는 통로 벽에 뚫린 거대한 구멍들이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오래된 터널들을 보았다. 제르사이 터널이야. 사이 칼리크 아래에 있군. 하지만 제르사이의 모습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 터널 아래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보였다. 조용히, 최대한 움직임을 줄이며 카이사가 어둠 속 입구를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예전에 마주쳤던 작은 제르사이 무리를 보았다. 네 개의 쥐는 힘이 있는 턱 갈퀴를 가진 가냘픈 이족보행 생명체, 부름꾼들이 서로에게 부드럽게 지저귀고 있었다. 그들의 비명은 사막을 뚫고 지나가 다른 포식자들에게 신선한 먹잇감을 알릴 수 있었다. 이미 부름꾼보다 크고 더 자랄 예정인 뾰족한 새끼들이 그들 옆에 서 있었다. 그들은 함께 수십 마리의 램프라이트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몸 옆에 화상 자국 같은 푸른 빛이 있었다. 내가 쏜 놈이야, 카이사가 공포에 질려 깨달았다. 탈리야의 공격으로 죽지 않았어. 아무도 안 죽었을지도 몰라...
지켜보던 중, 새끼 한 마리가 상처 입은 생명체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혀를 뻗어 상처 부위에 닿게 했다.
부드러운 푸른 빛이 새끼를 감쌌다. 녀석이 빛나기 시작했다.
부름꾼들이 갑자기 지저대는 소리에 카이사의 헉 하는 소리가 묻혔다. 무슨 짓을 하는 거지? 더 많은 새끼와 부름꾼들이 빛을 받기 위해 램프라이트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제르사이를 더 강력하게 만드는 건가? 그녀는 머리를 저어 생각을 떨쳐내고 상처 입은 녀석을 조준했다.
뭐든 간에, 내가 막아야 해.
그때, 거대한 쾅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렸다.
거대한 제르사이 모래분쇄자가 여덟 개의 눈 위로 솟은 칼날 같은 뿔로 돌벽을 뚫고 나타났다. 턱을 따라 늘어선 갈퀴가 바위를 긁어내며 깊은 흉터를 남겼다. 놈은 걸음마다 땅을 흔들며 먹잇감에게 공포를 심어주었다. 놈이 쉿쉿 소리를 내며 램프라이트에게 뿔을 휘둘렀다. 놈은 세 마리를 한꺼번에 베어 넘겼고, 쪼그라든 놈들의 몸에서는 밝은 피가 새어 나왔다.
모래분쇄자는 램프라이트들이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드는군.
램프라이트들이 비명을 지르며 통로—카이사가 있는 방향—로 달아났다. 그녀는 갑옷과 함께 자신의 몸이 투명해지는 익숙한 힘을 느꼈다. 램프라이트들과 모래분쇄자가 그녀를 지나 북쪽으로 달려갔다. 모래분쇄자의 뿔이 통로 천장을 깊게 갈라놓았다. 통로가 안쪽으로 휘어졌다.
무너질 거야.
그녀는 괴물들이 자신을 보지 못하는 동안 거대한 제르사이를 따라잡기 위해 앞질러 달렸다. 이게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아야 해. 반드시 이해해야 해.
그런데 뒤쪽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인간들의 비명.
카이사는 투명화를 풀고 아래에서 모든 게 무너지기 전에 지표면으로 향했다. 투구가 햇빛에 적응하며 눈을 깜박였다. 먼지 구름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고 암석이 무너지는 굉음이 고막을 찔렀지만, 여전히 패닉에 빠진 소리들이 들렸다. 그녀는 소리를 따라 달렸다.
그녀의 앞쪽에 모래분쇄자의 뿔이 통로 천장을 찢으며 생긴 균열이 보였다. 돌로 된 플랫폼 하나가 틈새 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지만, 대부분은 무너지지 않은 채 모래 위에 버티고 있었다. 플랫폼 위에 선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유일하게 한 인물만이 침착함을 유지했다. 탈리야. 돌 다리야. 그녀만이 그걸 받치고 있어. 그녀의 팔은 부하를 견디느라 떨렸지만, 천천히 플랫폼 앞부분을 다시 지표면으로 들어 올렸다.
아래에서 아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누군가 통로로 떨어졌어.
카이사는 탈리야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물러나야 해!” 플랫폼이 솟아오를 때 그녀가 외쳤다. “움직이지 않으면 전부 다 무너져 내릴 거야!”
“사미르가 아래에 있어요!” 탈리야가 플랫폼이 지표면에 쿵 소리를 내며 안착할 때 소리쳤다. “그 아이를 버려두고 갈 순 없어요!”
탈리야는 고통 섞인 비명과 함께 한 손으로 공중을 밀어냈다. 다리가 삐걱거리며 지반 침하 구간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탈리야는 균열 속으로 뛰어들었다.
카이사는 절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내가 돕지 않으면 저 안에서 죽을 거야.
카디라와 자이파가 다리에서 달려왔다. 카이사가 그들의 발밑을 향해 발사했다.
“뭐 하는 거예요?!” 카디라가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거대한 제르사이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어,” 카이사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어서 가.”
“탈리야와 사미르가 안전하다는 걸 알기 전까진 못 가요,” 자이파가 주먹을 쥐고 말했다. “우리가 도울 수 있어요.”
시간이 없어. 카이사는 어깨 돌기를 펼치며 생각했다. 수정이 에너지를 내뿜었다. 둘을 죽이면 나머지는 도망치겠지.
카디라와 자이파는 손을 잡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카이사는 모닥불 주위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녀와 나누었던 음식. 그들이 품었던 공포가 밤새 사라졌던 기억들.
... 그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내가 내려가서 도울게. 부탁이니, 돌아가. 너희가 사람들을 지켜줘야 해.”
“알겠어요. 하지만 둘 다 꼭 데려와야 해요,” 자이파가 뱉듯 말하며 카디라와 함께 다시 다리를 향해 달려갔다.
약속할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카이사는 무너져 내리는 구멍 속으로 뛰어들었다.
발이 바닥에 닿는 충격으로 보통 사람이라면 뼈가 부러질 정도였다. 멀리서 그녀는 빛나는 공허 생명체들을 보았다. 램프라이트뿐만 아니라 놈들이 변형시킨 새끼들과 부름꾼들까지, 매끄러운 돌돔을 에워싸고 있었다. 탈리야와 사미르가 저 안에 있겠군.
멀리서 들려오는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미묘하게 변했다. 모래분쇄자가 돌아섰어. 그녀가 깨달았다. 놈들이 램프라이트를 쫓는다면... 곧 이곳으로 올 거야.
카이사는 갑옷의 힘을 깊게 끌어올렸다. 그녀의 손목이 보라색 빛으로 뒤덮였다. 다시 투명해졌다.
그녀는 부름꾼들을 향해 발사했다. 다섯 마리 모두 소리 없이 죽었다. 새끼들이 공격의 근원을 찾으려 몸을 돌렸다. 눈먼 램프라이트들만이 공기를 맛보며 그녀를 감지할 수 있었다. 놈들이 위치를 확인하기 전에 그녀는 이미 새끼들을 처리했다.
이제 곤란해졌다. 수십 마리의 램프라이트가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며 최대한 빨리 달아났다.
순식간에 놈들이 따라붙었다. 카이사가 미친 듯이 사격했지만, 고작 몇 마리만 떨어졌다. 하나가 그녀의 발목을 낚아채, 혀의 가시로 갑옷을 찢었다. 놈들의 공격을 피하려던 그녀가 넘어졌다. 놈들은 사방에서 그녀를 베어 냈고, 갑옷이 상처를 메우는 속도보다 빨랐다. 팔과 다리, 뺨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입술 위로 흐르는 구리 맛을 느꼈다...
놈들이 혼란스러워하며 멈칫했다. 카이사는 놈들 너머를 보았다. 탈리야의 머리가 돔 위로 보였다. 그녀가 무언가 소리치고 있었다. 카이사의 투구가 재형성되었고, 탈리야가 “이쪽으로 와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카이사가 몸을 낮췄다. “도약할 발판을 만들어줘!”
그녀 발밑에서 땅이 폭발하며 공중으로 솟구쳤고, 공허 생명체들을 넘어 탈리야를 향해 날아갔다. 멀쩡한 발목으로 착지한 그녀는 전력 질주하려 했지만—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갑옷의 에너지를 빌려 에너지를 소진하는 대신 발목의 치유를 앞당겼다. 오래 달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괴물들이 가까워지자 탈리야가 카이사를 다시 자신 쪽으로 띄워주었다. 그녀가 착지한 지면은 예리한 돌기가 돋아나 있었다. 카이사는 램프라이트들이 탈리야가 아닌 자신을 쫓게 만들며 그 위를 달렸다. 가장 앞선 놈이 그녀의 표적 표시가 남아있었고, 다시 손을 뻗을 만큼 가까워졌다...
폭발이 놈을 산산조각 내며 땅을 빛나는 피로 물들였다. 카이사가 충격에 멈췄다.
“계속 뛰어요!” 탈리야가 외쳤다. “그게 폭발을 유발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녀는 탈리야 주위를 돌며 뛰었다.
램프라이트 몇 마리가 너무 가까이 다가왔다. 탈리야의 “바위 폭발”이 놈들을 찢어발겼다. 다른 놈들은 학습한 듯 속도를 늦췄지만, 대신 카이사의 미사일 표적이 되었다.
놈들의 수를 줄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모래분쇄자가 돌아오는 우르릉 소리가 더 커졌다. 시간이 없어.
몇 마리 남지 않았다. 카이사는 지쳐서 돔 근처에 섰고, 만들 수 있는 마지막 미사일을 발사했다. 지뢰밭에 느려진 공허 생명체들이 모두 미사일에 적중했다.
카이사는 미소 지으며 탈리야를 돌아보았다. 소녀는 공기 중의 먼지 때문에 창백해진 채 기침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팔은 겁에 질린 사미르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고, 사미르는 탈리야를 부축하느라 애쓰고 있었다.
“더는 못...” 탈리야가 헐떡였다. “땅이... 불안정해요. 더 이상 받칠 수...”
카이사가 탈리야를 안아 들었다. 사미르에게 자신의 등 뒤로 매달리라고 손짓한 뒤, 구멍의 벽을 향해 달렸다. 한계야. 이렇게 지표면까지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갑자기 탈리야가 카이사의 품에서 빠져나와 도약하며 발밑에 솟아오르는 돌다리를 소환했다. 그녀는 카이사를 끌어당겨 셋을 모두 위로 띄워 올렸다. 지표면 바로 아래에서 탈리야의 힘이 다했다. 카이사와 탈리야는 암벽을 잡고 버티려 애썼다...
흙과 먼지투성이의 손 십여 개가 아래로 뻗어 내려왔다. 진짜인가? 카이사가 손을 뻗으며 생각했다. 두 손이 그녀를 끌어올렸다. 진짜야. 그녀가 위를 올려다보자 탈리야의 캠프에서 본 얼굴들이 보였다. 그녀의 손목을 잡은 손 중 하나는 카디라의 것이었다. 구조받고 있어.
“자이파!” 모두가 안전하게 지표면에 올라왔을 때 탈리야가 울먹였다. “카디라! 우리를 구하러 와줬구나!”
“그리고 도움도 데려왔지.” 카이사가 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하네. 고마워.”
아래에서 모래분쇄자가 다시 구멍으로 뚫고 나왔다. 카이사는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움직이지 마'라는 입모양을 했다. 모래분쇄자는 소리나 진동, 움직임만 감지할 수 있었다. 가만히 조용히 있으면 살 수 있어.
괴물은 뿔로 램프라이트의 쪼그라든 시체들을 쿡쿡 찔러보았다. 놈은 주변을 서성거리다 죽은 부름꾼과 새끼들의 시체를 발견했다.
적들이 죽었다고 판단한 놈은 다시 바위를 뚫고 땅속으로 돌아갔다.
카이사는 놈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까지 아무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러고 나서 탈리야가 지쳐 창백해진 얼굴로 다시 땅에서 돌다리를 들어 올려 모두를 캠프 사람들에게 데려갔다. 에너지가 고갈된 카이사와 겨우 기가 죽은 사미르가 뒤를 따랐다.
“나 혼자서도 올라올 수 있었어,” 사미르가 피곤한 미소를 지으며 카이사에게 말했다. “그래도 도와주러 와줘서 고마워. 내가 모두의 발목을 잡았는데도 말이야.”
카이사가 아이를 곁눈질하며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본 최고의 바위술사를 그냥 둘 순 없잖아, 안 그래?”
화덕에 장작불이 밝게 타올랐다. 사이 칼리크에서 안전한 곳까지 탈리야가 만든 돌다리들이 캠프를 둘러싸는 벽이 되었다.
카이사는 몸이 얼마나 쑤시는지 들키지 않으려 빛이 닿지 않는 곳에 누워 있었다. 먹는 것보다 쉬는 게 낫지, 그녀가 불행하게 생각했다. 탄 양배추 냄새가 그녀 쪽으로 떠다녔다.
탈리야가 앉아 말없이 양배추와 기장이 든 그릇을 건넸다. 카이사는 그릇을 밀어냈다.
“배고프지 않아요?” 탈리야가 물었다.
“화가 나.”
탈리야가 놀란 듯 쳐다보았다. “왜요?”
“내 말을 들었어야 했어,” 카이사가 쓰라리게 말했다. “대신? 사람들을 지키지도 못했지. 네가 죽였다고 생각한 그 공허 생명체들이 우리를 공격한 놈들이었어. 전부 다 잃을 뻔했다고. 내가 없었으면, 넌 모두를 잃었을 거야.” 그녀는 탈리야의 입술이 일그러지고 턱이 굳어지는 모습에서 후회를 보았다. “그리고 가장 필요할 때, 사람들을 버렸어. 겨우 한 사람을 구하려고 노력하기 위해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았지.”
탈리야가 잠시 침묵했다. “고맙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당신도 구하러 내려왔을 때 똑같은 짓을 했잖아요, 그렇죠?”
카이사는 그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졸란으로 가지 마,”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카이사가 말했다. “무너진 그 공허 통로, 내가 따라오던 그 통로가 네가 가려던 경로 바로 아래였어. 졸란이 거기로 이어지는 게 확실해. 그 말은 공허가 이미 거기를 차지했다는 뜻이야.”
탈리야가 어깨를 늘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고 말할게요.”
“그들은 그렇다 치고. 너는?”
“음. 저는 졸란으로 갈 거예요.”
“탈리야—”
“거기가 당신이 가려는 곳이죠?” 탈리야가 한숨 쉬었다. “사람들을 보호해서 안전한 곳으로 데려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당신 말이 맞아요. 안전한 곳은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만들어야죠.”
“어. 무슨 뜻이지?”
“졸란에 공허가 있다면... 그럼 다시 뺏어오면 되죠! 사람들을 이끌고 갈 만큼 안전하게 만들고... 거기 이미 있는 사람들을 돕는 거예요.” 탈리야는 너무나 낙관적이었다.
“공허가 마을을 차지했다면... 구할 사람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거야.”
“여기서는 알 수 없어요. 단 한 명이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저에겐 그럴 가치가 있어요.” 탈리야가 다가와 카이사의 손을 잡았다. 카이사의 두 번째 피부를 통해서도 따뜻하고 굳은살 박인 손길이 느껴졌다. “당신 없이는 못 해요, 카이사. 그 램프라이트들을 혼자 죽이지 못했지만... 당신이 함께했을 때는 해냈잖아요. 같이 찾아봐요.”
내 고향이 공허에 먹혔을 때 탈리야가 있었다면... 나는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었을까. 카이사는 탈리야의 눈에 담긴 희망과 그 안의 강인함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나야. 세상은 이런 나를 필요로 해. 탈리야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걸 봤어. 나도 탈리야가 필요한 것 같아.
졸란에 살아있을지도 모를 누군가도 마찬가지고.
카이사가 탄 양배추 한 입을 베어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태피스트리를 위한 실 한 줄 더 추가하지.”
자이파가 사람들을 이끌고 떠나자 탈리야가 손을 흔들었다. 조금 전 자이파는 지도에서 이전 무역 도시였던 지점을 찾아냈고, 그곳이라면 방목지를 지나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식량이 떨어지더라도,” 그녀가 말했었다, “그곳에서 사냥할 기회가 있을 거예요.”
“안전하고 건강하길,” 탈리야가 그녀를 꽉 안으며 말했다. “위대한 직공의 축복이 모두와 함께하길.”
이제 그들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이번 여정의 유일한 동반자인 카이사를 돌아보았다. 함께 가는 사람이 있어서 기쁘겠지. 탈리야가 남몰래 미소 지으며 생각했다. 본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들은 함께 떠다니는 돌다리를 타고 사이 칼리크를 가로지르며 떠났다. 두 사람의 운명은 그렇게 잠시 하나로 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