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는 나무 기둥에 발목이 쇠사슬로 묶이고, 거친 밧줄로 손목이 결박된 채 꼿꼿이 서 있다. 검은색 녹서스식 튜닉 위로 뺨에서 흐른 핏방울이 떨어져 맨발가락 옆에 작은 붉은 웅덩이를 만든다. 그의 머리 위로 하늘은 파란색과 회색의 얼룩을 칠하며 자신의 진짜 색깔을 잊은 듯하다.
죄수 주위로는 뾰족한 통나무들이 높게 세워진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다. 근처에서는 병사들이 텐트 사이를 바쁘게 뛰어다닌다. 그들의 서두르는 발걸음마다 먼지가 피어오르고, 지휘관을 대면하기 전 반드시 닦아내야 할 오물이 군화에 묻는다. 지난 며칠간 그들의 절도 있는 행동을 지켜본 죄수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전까지 보아온 어떤 군대와도 달랐다.
진영 주변에는 바람에 나부끼는 짙은 남색 깃발들이 걸려 있다. 그곳에는 양쪽으로 펼쳐진 날개 사이를 가르는 검, 즉 데마시아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검은색과 진홍색의 녹서스 깃발이 걸려 있었다. 죄수는 제국을 위해 칼스테드를 탈환하라는 명령을 기억한다.
그는 실패했다.
그리고 그 대가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전쟁은 실패를 용서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가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진실이다. 지금 그는 자신의 운명을 기다릴 뿐이다. 처음 포로가 되었을 때 그는 고향을 잃었다. 이번에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는 눈을 감는다. 수많은 기억이 밀려든다. 그에게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한 명은 그의 주인—고향에서 끌려온 길 잃은 소년을 레코너 경기장에 걸맞은 투사로 키워낸 자였다. 다른 한 명은 제국의 최우선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낯선 자였다. 그들이 악수를 나눈 후, 그는 아르젠트 산맥의 그림자 아래에 위치한 칼스테드로 보내졌다.
작별 인사도, 행운을 비는 말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와 같은 처지의 자들이 있었으니, 녹서스에서는 그들을 '불운의 병사들'이라 불렀다. 정예 부대가 맡기엔 가치 없는 임무를 처리하기 위해 투입된 오합지졸들. 주인들이 적절한 대가만 주어진다면 언제든 군대에 자신의 노예를 팔아치울 의향이 있었기에,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녹서스 놈치고는 다르게 생겼군." 죄수의 사색을 깨뜨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가 눈을 뜨자 울타리 밖에 서 있는 데마시아 군인이 보인다. 사슬 갑옷 위에 남색과 갈색 천을 덧댄 복장을 한 그의 허리에는 짧은 검이 매달려 있다. 죄수가 판단하기에 하급 지휘관쯤 되는 것 같다.
"이름이 뭐냐?" 군인이 묻는다.
죄수는 생각한다. 대답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까?
"신 짜오." 그는 거칠고 메마른 목소리로 대답한다.
"뭐라고?"
"신... 짜오."
"녹서스 이름 같지가 않은데." 군인이 의아한 듯 중얼거린다. "녹서스 이름들은 좀 거칠거든... 이를테면 보람 다크윌 같은." 그는 그 이름을 말하며 몸을 떨었다.
신 짜오는 대답하지 않는다. 곧 처형당할 처지에 이런 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리 오게, 방패 분대장." 다른 데마시아인이 나타난다. 엄격한 인상의 젊은 장교가 분대장의 주의를 끈다. 그녀는 어깨 갑옷을 금색 테두리로 장식한 은색 갑옷을 입고 있으며, 등 뒤에는 선명한 파란색 망토가 늘어져 있다.
"녹서스 놈들과 말 섞지 마라." 그녀가 조언한다. "그들은 우리의 미덕을 공유하지 않으니까."
분대장이 고개를 숙인다. "알겠습니다, 크라운가드 검의 대장님. 하지만 여쭤볼 게 있어서..."
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왜 이 자는 혼자 따로 가둬둔 겁니까?"
그녀가 죄수를 흘겨본다. 그녀의 푸른 눈에는 경멸이 서려 있다.
"이놈은 다른 놈들보다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갔거든."
신 짜오는 나팔 소리에 잠에서 깬다. 그는 진흙 바닥에 앉아 감각이 없는 발로 축축한 흙을 걷어찬다. 기둥에 등을 기대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운 그는 전날의 분대장이 다른 네 명의 병사와 함께 다가오는 것을 본다. 그들이 울타리 문을 열고 분대장이 가장 먼저 안으로 들어온다. 그의 손에는 뜨거운 수프 그릇이 담긴 쟁반이 들려 있다.
"안녕. 난 올버라고 한다. 이들은 내 부대원들이지." 분대장이 말한다. "아침 식사다, 젠 자."
신 짜오는 그가 쟁반을 땅에 놓는 것을 지켜본다. 이렇게 두 음절을 잔인하게 잘못 발음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데마시아 경비병 하나가 익숙한 동작으로 신 짜오의 손목을 묶은 밧줄을 잘라낸다. 분대장과 다른 이들은 칼자루에 손을 올린 채 서 있다.
"자, 어서 먹어." 올버가 말한다.
신 짜오는 그릇을 집어 든다. "너희는 다섯이나 왔군."
"대장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뿐이다." 올버가 설명한다. "어쨌든 그분은 크라운가드 가문이시니까. 그들은 국왕 폐하를 호위하는 분들이지."
경비병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를 쳐다본다.
"맞아, 그녀의 아버지가 스톰팽에서 지난번 자르반 왕을 구했지." 누군가 언급한다.
"그게 몇 대 자르반이었지?" 다른 이가 묻는다.
"2대였어. 지금은 3대 왕이시지."
"자르반 3세 국왕 폐하시다." 올버가 끼어든다. "너희들의 왕이자, 나의 왕이지. 그분이 직접 이곳까지 행차하셨으니 예의를 갖추는 게 좋을 거야."
그들은 자신들의 왕을 매우 존경하는 것 같다. 병사들이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 신 짜오는 수프를 한 모금씩 마시며 그들의 대화를 듣는다. 그들은 녹서스군이 이 서쪽 끝까지 모험을 감행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칼스테드를 구원하는 일이 얼마나 쉬웠는지, 그리고 자신들의 승리가 정의의 이름으로 이루어졌음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여기서 죽으라고 보내진 거였어.' 신 짜오가 깨닫는다. 그는 빈 그릇을 너무 세게 움켜쥔 나머지 그릇이 깨지며 나무 조각이 손에서 부서진다.
데마시아인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올버가 신 짜오를 쳐다본다. "손 내밀어."
신 짜오는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내민다.
"꽤나 고생했군." 올버가 신 짜오의 손목에 새 밧줄을 묶으며 말한다. 경비병들이 주위로 모여든다. 그들은 신 짜오의 피부 위로 강물처럼 뻗어 있는 흉터를 본다. 신 짜오는 그들의 시선을 따라간다. 이제는 어떤 흉터가 어떤 경기에서 생긴 건지 알 수도 없다. 그만큼 수많은 경기를 치렀고,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경기는 거의 없었다.
"최근 상처들은 아니군." 경비병 중 하나가 말한다.
"맞아." 신 짜오가 말한다. 맑고 힘 있는 그의 목소리에 모두가 주목한다. 잠시 동안 그들은 그를 그저 흔한 포로가 아닌 것처럼 쳐다본다.
"녹서스에서 뭘 했지?" 올버가 묻는다.
"경기장에서 싸웠다." 신 짜오가 대답한다.
"레코너였군!" 경비병이 소리친다. "그 야만인들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수천 명 앞에서 죽을 때까지 싸운다는!"
"난 '젠 자'라는 레코너는 들어본 적 없는데." 다른 이가 중얼거린다.
"실력이 없었나 보지? 그러니까 이렇게 얻어맞고 묶여 있는 거겠지."
"잠깐." 올버가 끼어든다. "레코너들은 경기장에서 다른 이름을 쓰지 않나?"
신 짜오가 거의 미소를 지을 뻔한다. 이 데마시아인은 생각보다 똑똑하다. 레코너들이 종종 창의적인 칭호를 선택한다는 것은 제국 밖에서도 알려진 사실이다. 화려한 이름을 택하는 이도 있고, 무언가를 숨기려는 이도 있다. 신 짜오에게 있어 그것은 빼앗기기 전의 삶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다.
"비세로." 한 경비병이 펼쳐진 양피지를 들고 말한다. "다른 녹서스 놈들이 그렇게 불렀어."
올버가 양피지를 낚아채 확인한다. 긴 시간이 흐른 뒤 그가 신 짜오를 올려다본다. "네가 그 레코너였군."
정적. 흐린 하늘 사이로 가느다란 햇살이 비친다.
"비세로." 올버가 경외심 어린 목소리로 반복한다.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자."
경비병들이 서로를 쳐다본다. 그러고는 다 함께 신 짜오를 응시한다. 그들의 눈에는 이제 그를 알아봤다는 빛이 감돈다.
"알고 있어!" 경비병이 말한다.
"미노타우로스를 이기지 않았나?" 다른 이가 말한다.
올버가 손을 들어 잡담을 멈춘다. "왜 네 이름을 젠 자라고 했지?" 그가 묻는다.
신 짜오가 한숨을 쉰다. "레코너가 된 순간, 신 짜오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오직 비세로만 있었지." 그는 묶인 손목과 쇠사슬이 묶인 발목을 내려다보고는 다시 데마시아인들을 본다. "남은 시간만이라도 진짜 내 이름으로 살고 싶었다."
"그런데 유명한 레코너가 왜 녹서스의 국경 전쟁에 투입된 거지?" 올버가 다시 묻는다.
"군대에 팔려갔다." 신 짜오가 대답한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자신의 마지막 순간이 경기장에서 창이나 검에 찔려 빠르게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뜻한 식사와 과거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서 죽게 될 줄은 몰랐다.
운명이 마지막 동정을 베푸는 것일까?
올버가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네 선택이 아니었군."
신 짜오가 고개를 젓는다.
"녹서스에 남은 가족이 있나?"
신 짜오는 잠시 생각하다 다시 고개를 젓는다. 어디든 가족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음,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겠군." 올버가 고개를 끄덕이자 경비병 하나가 열쇠를 꺼내 신 짜오의 사슬을 풀기 시작한다.
신 짜오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고개를 갸웃한다. "무슨 뜻이지?"
올버가 웃는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자고."
신 짜오는 새로 받은 튜닉을 입고 똑바로 앉아 있다. 데마시아의 천은 살갗에 닿는 감촉이 부드럽다. 그는 텐트를 둘러보며 지푸라기 침대와 빈 수프 그릇들을 센다. 귀에는 감사하는 말이 가득하다. 그는 그 흙 냄새 섞인 목소리들을 알아듣는다. 몇 시간 전만 해도 그와 같은 포로였던 이들의 목소리다.
한 사람씩 침대에서 일어나 상처를 치료해 준 치료사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무장한 데마시아인들이 텐트로 들어오고, 신 짜오는 다른 포로들이 호위받으며 나가는 것을 지켜본다. 그들은 잘 알고 있는 사이다. 칼스테드로 행군하는 내내 함께했으니까. 여정 동안 그들은 서로의 힘을 과시하며 누가 더 강한지 다투곤 했고, 승리자는 뽐내고 패배자는 수치스러워했다. 특히 목소리가 큰 자들은 데마시아 병사들을 얼마나 많이 죽일 것인지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진짜 군대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전투는 없었다. 군단과 공성 병기를 갖춘 녹서스 정규군이었다면 더 잘 싸웠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정규군이 아니었다. 정식 전투 훈련을 받지 못한 징집병들이었고, 그 앞에는 단결된 왕국이 있었다. 몇 시간 만에 칼스테드는 구원자들을 향해 환호했다.
'우리는 여기서 죽으러 보내졌어.' 신 짜오가 스스로를 일깨운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그들은 살아남았다. 녹서스의 의지가 아닌, 데마시아의 의지에 의해서.
'운명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같아서, 항해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경로를 알 수 없다.' 원로들이 했던 말이다.
나이 든 치료사가 다가온다. 그녀의 창백한 로브는 텐트 안에서 일하는 다른 이들과 같다. "기분은 좀 어떤가, 아이야?" 그녀가 묻는다.
"괜찮습니다." 신 짜오가 대답한다. "감사합니다."
"나에게 감사하지 말게. 국왕 폐하께 감사드려라. 모든 포로를 보살피라는 것은 그분의 왕명이었으니."
"자르반 3세?" 또 이 왕이다. 한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가?
"그렇다, 우리의 위대한 자르반 3세 국왕 폐하시지." 그녀가 정정해 준다. "그분께서 너에게 새로운 시작의 기회를 주신 거야. 평화를 찾을 기회를."
신 짜오는 손을 맞잡고 바닥을 내려다본다. 비세로는 언제나 경기장에서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밖의 곳에서도 발로란의 사람들은 그의 강인함 때문에 그를 환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곳—수십 년 동안 보지 못한 바다 건너의 '최초의 땅'은 이제 그에게 먼 판타지처럼 낯설기만 하다.
그는 어디서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 과연 평화를 원하기는 할까?
아니, 그의 평화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그가 첫 살인을 저지르고 보상으로 자신의 생명을 연장받았던 바로 그 순간에.
신 짜오가 치료사를 향해 돌아선다.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아이야."
"당신들의 왕, 그분은 어떤 분입니까?"
치료사가 웃음을 터뜨린다. "직접 확인해보는 게 어떻겠나?"
신 짜오는 네 명의 경비병에 둘러싸인 채 올버의 뒤를 따른다. 진영을 가로지르며 그는 지나치는 텐트 안을 엿본다. 데마시아 병사들은 짐을 꾸리고 장교들은 다음 배치를 계획하고 있다. 소문에 따르면 일주일 거리 내에 녹서스와의 또 다른 전투가 임박했다고 한다. 신 짜오는 이 사람들이 그 혼란의 흔적을 따라가며 가는 곳마다 잘못을 바로잡는 것인지 생각한다. 그들은 더 높은 부름을 따르는 것 같다. 힘보다 더 강하고, 아마도 더 가치 있는 무언가를 위해.
자신의 신념이 너무나 뚜렷해서 기꺼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게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 본다. 경기장에서 자신의 목숨이 아무런 의미가 없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목숨은 왕을 알현할 가치가 있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인 모양이군." 올버가 호위를 멈추고 앞을 가리키며 말한다.
신 짜오는 분대장의 손가락 끝을 따라 다른 모든 텐트보다 큰 텐트를 발견한다. 지붕에는 같은 남색 깃발이 걸려 있다. 빛나는 갑옷을 입은 경비병들이 입구 밖에 평행하게 서 있다. 신 짜오는 얼굴과 목에 녹서스 문신을 한 남자가 작은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본다. 그 남자는 여러 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경비병에게 이끌려 떠나고, 즉시 다른 데마시아인이 빈자리를 채운다.
"저게 국왕 폐하의 텐트다." 올버가 말한다. "우린 여기서 기다릴 테니, 너는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왕께서 하사하시는 보급품을 받아라. 그러고 나면 우리가 다시 데리러 가겠다."
분대장이 미소 짓는다. "국왕 폐하께서는 일단 그분 앞에 서게 되면 넌 자유의 몸이라고 하셨지... 하지만 밖으로 나오면 여전히 우리 보호가 필요할 거다. 크라운가드 대장님께서 이 캠프를 지휘하시는데, 그분은 적군이 혼자 돌아다니는 꼴을 못 보시거든. 칼스테드를 완전히 떠나기 전까지는 말이지."
신 짜오는 말뜻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텐트를 향해 걸어간다.
"국왕 폐하께서 비세로를 접견하신다!"
우렁차고 격식 있는 목소리가 그를 맞이한다. 신 짜오가 앞으로 걸어간다. 텐트 안으로 들어선 그는 오른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깊이 숙인다. 바닥에는 날개 달린 기사와 투구를 쓴 전사들이 수놓아진 천이 깔려 있다.
"고개를 들어라."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신 짜오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다. 자신보다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남자가 높게 솟은 참나무 의자에 앉아 있다. 그는 흑단 가시로 장식된 찬란한 황금빛 갑옷을 입고 있다. 머리에는 보석이 박힌 왕관이 씌워져 있다. 그의 오른손 옆에는 거대한 강철 창이 놓여 있는데, 마치 웅장한 야수의 이빨처럼 날카롭다.
이들이 왕이구나, 신 짜오는 깨닫는다. 그는 그에게서 풍기는 위엄과 예상치 못한 압도적인 신체적 기운을 느끼며 잠시 그를 응시한다.
왕의 왼쪽에는 신 짜오가 처음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침착한 표정의 크라운가드 검의 대장이 서 있다.
왕의 오른쪽에는 왕실 튜닉을 입은 어린 소년이 앉아 있다. 소년은 참나무 의자에 앉아 작은 가죽 부츠를 달랑거리고 있다. 왕과 닮은 높은 콧대와 사각 턱을 보면 누구나 그가 아들임을 알 수 있다. 두 명의 경비병이 창을 위로 세운 채 이들 셋을 호위하고 있다.
"비세로라... 참 특이한 이름이군." 자르반 3세 국왕이 말한다. "어디서 온 이름인가?"
신 짜오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며 시선을 아래로 떨군다.
"왕께서 질문하시면 대답하도록." 검의 대장이 명령한다.
"편하게 있게, 티아나." 국왕이 손을 저으며 말한다. "지난 며칠간 겪은 일 때문에 충격을 받았겠지. 이 사람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검의 대장은 대답하려다 입을 다물고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제 고향을 기억하기 위한 이름입니다." 신 짜오가 대답한다.
"오, 그런가?" 국왕이 흥미롭다는 듯 말한다. "녹서스에 대해 많이 공부했지만 '비세로'라는 곳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장소라기보다는 기억입니다... 녹서스에서는 의미가 변해버렸지만요."
"아," 국왕이 아들을 잠깐 쳐다보며 말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란 참..."
"하지만 제 본명은 아닙니다."
"감히 국왕 폐하의 말씀을 끊느냐?" 검의 대장이 호통을 친다. 그녀의 손이 검자루를 움켜쥔다.
신 짜오가 고개를 숙인다. 그때, 다시 한번 크고 시원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자르반 3세의 목소리다.
"오늘 티아나를 이토록 당황하게 만든 사람은 네가 처음이군." 왕이 말한다. "이번이 그녀가 불굴의 선봉대를 이끄는 첫 전투였는데, 전투라고 부르기엔 민망했겠지만 말이야."
그는 조용히 아버지를 관찰하고 있던 어린 왕자의 어깨를 토닥인다. "계속하게." 국왕이 말한다. "비세로, 아직 내게 밝히지 않은 그대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게."
시선을 낮춘 채 신 짜오가 숨을 고른다. "제 본명은 신 짜오입니다. 아주 어릴 때 헤어진 부모님이 지어주셨죠. 살아계신지, 아니면 죽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가 침을 삼킨다. "제가 태어난 곳은 '라이콘'이라 불리는 해안 마을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아이오니아라고 부르더군요. 어린 시절은 '비세로'라는 어선 위에서 어르신들을 도우며 보냈습니다. 삶은 단순하고 평화로웠죠... 붉고 검은 배를 탄 약탈자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요."
그가 잠시 눈을 감는다. 데마시아인들 중 누구도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붙잡혔죠. 바다 위에서 몇 달을 보낸 뒤 도착한 녹서스는 모든 것이... 거대하고, 억압적이고, 가혹했습니다. 고향을 채우던 자연의 아름다움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죠."
신 짜오는 낮은 동의의 소리를 듣는다. 나직한 웅성거림, 작은 속삭임.
"길 잃은 소년이 그렇듯, 저는 살아남기 위해 뭐든 해야 했습니다. 자랑스럽지 못한 일들로 권력자들의 눈에 띄었죠. 그들은 제 힘을 알아보고 투사로 키웠습니다. 그렇게 비세로가 다시 태어났습니다. 레코너로서 말입니다."
그는 목소리가 낮아지자 한숨을 내쉰다. "저는 수많은 적을 죽였습니다. 진짜 이름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았죠. 제가 더 많이 죽일수록 관중들은 '비세로! 비세로!'라고 더 크게 환호했고, 그들의 금화는 제 주인들의 주머니를 채웠습니다. 저는 경기장에서 남들의 유흥을 위해 싸우는 게 제 삶의 전부라 생각했습니다. 녹서스가 제 주인들에게 경기장에서 벌어들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금을 제시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신 짜오의 어깨가 떨어진다. "그게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전부입니다. 당신들의 병사들이 나머지 이야기는 알겠지요."
자르반 3세는 말이 없다. 모두가 그의 말을 기다린다.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군." 왕이 마침내 말한다. 그는 아들을 힐끗 보고는 다시 신 짜오를 쳐다본다. "그대의 여정을 이야기해 줘서 고맙네. 그대를 녹서스의 굴레에서 해방할 수 있어 나와 우리 데마시아 모두가 자랑스럽네."
왕이 경비병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경비병 하나가 리넨 주머니를 꺼내 신 짜오 앞에 내려놓는다. 주머니 안에서 금화가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이것은 자르반 3세 폐하의 축복이다." 크라운가드 대장이 선언한다. "일주일은 충분히 여행할 수 있는 금이다. 데마시아 왕국이 보호하는 땅을 침범한 죄는 크지만, 선의의 표시로 국왕 폐하께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 것이니 부디 잘 사용하도록."
신 짜오는 주머니를 쳐다보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정말 이게 전부인가? 이 가방을 들고 그냥 나가면 되는 건가? 방금 그는 평생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진실을, 손짓 하나로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낯선 이에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 낯선 이는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주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는 이제 더 이상 낯선 이가 아니었다.
'나에게 평화는 없겠지만, 대의는 있을지도 몰라.'
"자, 어서." 크라운가드 대장이 출구를 가리키며 말한다.
신 짜오가 고개를 숙인다. "청이 하나 있습니다."
"말해보게." 왕이 말한다.
"당신의 호위병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말도 안 돼!" 크라운가드 대장이 소리친다. 경비병들이 일제히 창끝으로 바닥을 두드린다.
왕은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리며 검의 대장을 돌아본다. "참 흥미로운 제안이군."
"분명, 저 자는..." 크라운가드 대장이 말을 시작하려 하지만 왕의 손짓에 가로막힌다.
"그 사람 스스로 설명하게 두지." 자르반 3세가 미소 지으며 말한다. "이유가 궁금하군."
신 짜오가 고개를 든다. 그의 눈이 왕의 눈과 마주친다. "폐하께서는 제게 자비와 명예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가 시작한다. "제가 한 번도 알지 못했던 것들이죠. 녹서스에서 보낸 모든 세월 동안 저는 제 것이 아닌 대의를 위해 싸웠고, 그동안 제가 배운 진실은 딱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승리는 생존을 의미하고, 패배는 죽음을 의미한다. 경기장에서 쓰러진 투사들이나, 패배를 거듭하다 사라져버린 이들을 보며 배운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과 당신의 백성들은 다른 무언가를 위해 싸웁니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요."
바람이 텐트를 흔든다. 어린 왕자가 꼼지락거린다. 신 짜오는 목을 가다듬는다.
"저는 명예를 위해 싸우다 죽을지언정, 평생 그 선택을 하지 못했다는 후회를 하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르반 3세가 몸을 앞으로 숙인다. 모두가 숨을 죽인다.
"말솜씨가 훌륭하군." 왕이 대답한다. "솔직히 내 조언자들보다 낫네. 하지만 내 호위병이 되려면 수년간, 아니 수십 년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네. 그대가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믿어야 하지?"
신 짜오는 왕과 왕자, 그리고 크라운가드 대장을 응시한다. 마음속 한편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이것은 그의 선택일까?
아니.
운명이 이미 선택을 내렸다.
그는 금화 주머니를 낚아채 검의 대장의 얼굴을 향해 던진다. 그녀가 당황하는 사이, 그는 왼쪽 경비병의 다리를 걸어 쓰러뜨린다. 신 짜오는 경비병의 창을 빼앗아 원을 그리며 휘둘러 오른쪽에 있는 다른 경비병까지 넘어뜨린다. 마치 경기장으로 돌아간 것처럼 그의 몸은 본능적으로, 유연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마지막으로 무기를 돌려 찌르는 동작을 멈추고, 창끝을 자르반 3세의 목 바로 앞까지 가져다 댄다.
어린 왕자가 숨을 들이쉰다. 경비병들이 자세를 고쳐 잡는다. 병사들이 들이닥치고 크라운가드 대장이 검을 뽑는다.
신 짜오는 무릎을 꿇는다. 그는 아무런 소리 없이 창을 내려놓고 자신의 목을 드러낸다. 정교하게 제련된 강철 무기들이 그의 피부에 닿는다.
긴장감이 방을 채운다. 모든 이의 시선이 신 짜오에게 꽂힌다. 그는 눈을 감은 채, 그다음 일어날 일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며 평온을 되찾는다.
국왕이 망토를 매만진다. "물러나라." 그가 명령한다. "내 아버지는 녹서스가 그 경기장에서 인재들을 낭비한다고 하셨지. 이제 그 말의 진실을 깨닫겠구나."
"국왕 폐하!" 크라운가드 대장이 간청한다. "이 자가 폐하를 죽이려 했습니다!"
"아니, 티아나." 왕이 대답한다. "그는 내가 어떻게 죽을 수 있는지 보여준 것이야. 나의 신뢰하는 호위병들 앞에서도 말이지."
"깊이 사죄드립니다." 신 짜오가 말한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침착하다. "제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증명했지." 왕이 말한다. "나와 이 데마시아의 전사들에게 말이야. 그들이 너에게 배울 점이 좀 있어 보이네."
"저는 국왕 폐하의 호위 부대가 포로 따위로 더럽혀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크라운가드 대장이 소리친다.
"이 자는 내 앞에 나타난 순간 이미 포로가 아니었다." 왕이 의자에서 일어난다. "데마시아는 오래전 이 세상의 악으로부터 피난처를 찾던 선한 사람들에 의해 세워졌다. 이 사람의 이야기는 위대한 오를론과 그의 추종자들에 대한 옛날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군. 내 아버지가 자주 해주셨던 이야기들 말이지."
그의 시선이 왕자에게 향한다. 왕자는 경이로운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다. "내 아들이자 삶의 기쁨인 아이야," 왕이 말한다. "이 순간을 네 눈으로 보게 되어 정말 기쁘구나. 우리가 왜 미덕을 지켜야 하는지, 다른 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꿈을 가질 수 있게 하려면 왜 그래야 하는지 직접 깨닫거라. 이해하겠느냐?"
"네, 아버지." 왕자가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왕이 앞으로 다가온다. "신 짜오, 그대의 삶과 용기는 나를 감동시켰네.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귀한 감정이지." 그는 몸을 굽혀 신 짜오를 일으켜 세운다. "비록 데마시아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그대에게 돌아가는 길을 허락하겠다. 내 왕국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나의 개인 호위병으로서 그대의 충성심을 증명하도록 하라."
신 짜오는 왕의 단단한 손이 자신의 어깨를 쥐고 있음을 느낀다.
"이 기회를 가볍게 여기지 말게."
신 짜오는 자르반 3세를 똑바로 쳐다본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는 비세로를 자유롭게 해주었던 그 파도처럼 몸 전체를 씻어 내리는 기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