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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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한 자
야스오
아이오니아


배경 스토리

불굴의 의지를 지닌 검객 야스오는 바람을 자유자재로 휘둘러 적들을 쓰러뜨린다. 위엄 있는 풍채와 날렵한 검술을 겸비한 그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빛을 발했다. 그러나 기구하게도 야스오는 더러운 누명을 뒤집어썼고 온 세상이 순식간에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제 무사에게 주어진 것은 처절한 싸움의 나날뿐... 생존을 위해,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기 위해 야스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아이오니아의 이름난 검술 도장에서도 야스오의 재능은 단연 눈에 띄었다. 언제나 남다른 실력을 자랑했던 그는 전설적인 바람의 검술을 완벽히 습득하고 구사했는데 이는 당대의 어떤 검객도 결코 성취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야스오가 위대한 검성으로 거듭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아이오니아를 향한 녹서스의 침공 앞에서 송두리째 뒤바뀌고 말았다. 자신의 검으로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야스오가 아이오니아 원로의 호위무사라는 본인의 직무를 등한시하고 전선의 난투 속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가 전선에서 돌아왔을 땐 원로는 이미 누군가의 손에 암살당한 후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명예를 우선시했던 야스오는 기꺼이 자수하여 자신의 목숨으로 죗값을 치르고자 했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그에게 내려진 혐의는 직무유기가 아니라 암살죄였다. 내가 반역죄를 지었다고? 원로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고통받던 그였지만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인정할 수는 없었다. 아무도 야스오를 믿어주지 않았으므로 그는 직접 범인을 밝혀내고자 했고, 이를 위해서는 자유의 몸이 될 필요가 있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문파에 검을 겨누었는데 이는 아이오니아 전체를 적으로 만드는 행위였다. 그러나 진범을 밝혀내고 벌하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이든 모두 감수해야만 했다. 그로부터 몇 년간, 야스오는 혈혈단신으로 진범을 추적하며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실마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면서 그는 한때 아군이었던 무사들에게 끝없이 쫓기거나 마지못해 싸워야만 했다. 그렇게 목숨을 부지하며 점점 진실에 가까워져 가고 있던 그의 앞에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무사가 나타났다. 가장 두려운 적수였던 그 사내의 이름은 요네... 야스오의 친형이었다.

결투의 예법은 형제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두 무사는 머리를 숙여 서로에게 예를 표했고 지체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달빛 아래의 정적 속에서 그들은 말없이 자신의 혈육을 바라보았다. 원을 그리며 상대의 빈틈을 노리던 두 사람은 마침내 검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네조차도 야스오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단칼에 형을 쓰러뜨린 동생은 곧바로 형을 향해 뛰어갔다. 손에서 검을 떨어뜨린 채 피를 흘리며 가쁜 숨을 쉬고 있는 형을 마주하자 야스오의 가슴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치밀었다. 분노였을까? 슬픔이었을까? 야스오는 어떻게 혈육을 의심할 수 있느냐고, 어떻게 형이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원로가 바람의 검술에 당했는데 너 말고 또 누가 바람의 검술을 다룰 수 있겠느냐? 요네의 답을 들은 야스오는 비로소 자신의 검술이 모든 오해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생은 형에게 자신의 결백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필사적으로 용서를 구하기 시작했다. 눈물이 야스오의 앞을 가리는 가운데 형의 주검은 동생의 품속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머지않아 다른 무사들이 추적해 올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 아래 형을 묻은 야스오는 차오르는 슬픔을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요네의 전언은 야스오의 방랑에 새로운 국면을 열어주었다. 진범을 밝혀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손에 넣은 동생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형의 무덤을 돌아보았다. 굳은 맹세 속에서, 길을 재촉하는 야스오의 등 뒤로 다시 한 번 바람이 일었다.

검의 이야기는 피로 쓰여지지. -- 야스오


칼집 없는 검

검이란 사람이 쥐지 않으면 어디에도 쓸모 없는 물건이다. 검객에게 살생하는 법을 가르치기는 쉽다. 살생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게 어려울 뿐.

내 아우 야스오가 검술 훈련을 막 시작했을 때부터 그가 손에 쥔 검은 마치 살아서 춤을 추는 듯 했다. 야스오가 위대한 옛 검성들과 견줄만하다고 수군대는 소리를 들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검술이 일취월장할수록 아우는 오만해져 갔다.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교만에 젖어있던 야스오는 사부의 가르침은 한 귀로 흘리고 성급한 행동을 일삼기 시작했다.

내 아우임에도 야스오가 두려웠던 나는 차마 엄하게 꾸짖을 순 없었다. 대신 그의 의협심에 호소할 수 밖에...

나는 아우에게 단풍나무 씨앗을 건넸다. 우리 도장에서 겸손을 상징하던, 야스오는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던 그 씨앗. 단풍나무 씨앗은 그저 한낱 씨앗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속에 감추고 있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야스오는 내가 씨앗을 건네준 다음 날, 평범한 호위무사 자리를 받아들였다. 나는 비로소 아우가 진정한 검객이 되기 위한 인내와 덕을 갖추리라 기대해 마지 않았다.

그건 착각이었다.

야스오는 오늘 자신이 호위해야 했던 이를 죽이는 반역 행위를 저질렀다. 조국과 친구,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배신해 버린 것이다. 내가 그 씨앗을 건네지 않았더라도 아우가 이렇게 어둠의 길로 휩쓸렸을까?

하지만 내가 맡은 임무는 그런 개인적인 의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완수해야 할 뿐이다. 내일 여명이 밝는 대로, 칼집 없는 검처럼 위태로운 내 아우 야스오를 붙잡으러 떠나야 한다.


새와 나뭇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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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네 힘은 파괴를 위한 거다. 그 힘을 쓰고 싶지 않다고? 좋다. 그대로 돌처럼 가라앉든가.”

탈리야가 바닷물에 빠지기 전 녹서스 선장에게서 들은 마지막 말이자, 아직도 그녀를 괴롭히는 말이었다. 해변으로 도망쳐 온 지 4일이 지났다. 처음에는 무작정 뛰었고, 아이오니아 농부들과 녹서스 군사들의 피 튀기는 싸움 소리가 들리지 않고 나서부터는 걸었다. 차마 자신이 빠져나온 아수라장 쪽을 돌아보지는 못하고 산기슭을 따라 나아갔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 건 이틀 전이었다. 아니, 사흘 전이던가. 기억나지 않았다. 오늘 아침, 빈 사원을 지날 때 계곡 사이로 생기 없는 기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거세진 바람 덕에 구름 사이로 맑고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너무 맑은 색이라 다시 물에 빠진 느낌이었다. 그녀도 잘 아는 하늘이었다. 어릴 때 본 하늘은 모래사막을 포근히 감쌌다. 그러나 여기는 슈리마가 아니었다. 이곳의 바람은 환영하는 느낌이 없었다.

탈리야는 자신을 부둥켜안으며 고향의 온기를 기억해내려 했다. 외투로 눈을 막고 있었으나, 여전히 찬 공기가 스며들었다. 보이지 않는 외로움이 그녀 주위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뼛속까지 사무쳤다. 사랑하는 이들한테서 이토록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주머니 깊숙이 손을 넣어 떨리는 손가락 끝으로 온기를 찾아 반질반질해진 돌을 이리저리 굴려 보았다.

“나는 배고플 뿐이야. 그게 다야.” 탈리야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말했다. “토끼 한 마리, 작은 새 한 마리. 위대한 바위술사님, 나타나기만 한다면 쥐도 괜찮습니다.”

마치 명령에 따르는 듯,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눈가루가 바스락거리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범인은 토끼굴에서 머리를 쏙 내민, 탈리야의 두 주먹 크기도 안 되는 회색 털 뭉치였다.

“감사합니다.” 탈리야가 이를 바들바들 떨며 속삭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탈리야가 주머니에서 반들반들한 돌멩이를 꺼내 팔매의 가죽 부분에 얹는 동안, 동물은 그녀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무릎을 꿇은 채 돌을 날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위대한 바위술사님이 주신 이 사냥감을 놓칠 순 없었다.

돌멩이를 팔매에 얹어 당기는 동안에도 그 작은 동물은 그녀를 계속 쳐다보았다. 추위가 탈리야의 몸을 휘감아 팔에 경련이 일었다. 이 정도 속도면 되겠다고 생각한 순간 돌을 날렸으나, 운 나쁘게도 세찬 재채기가 터져 나왔다.

쌓인 눈을 따라 낮게 날아간 돌은 소중한 한 끼가 됐을 사냥감을 아슬아슬하게 놓쳐버렸다. 반동으로 제자리로 돌아온 탈리야가 짜증이 나 으르렁거렸다. 그 소리가 적막한 주위에 무겁게 메아리쳤다. 그녀는 추위에 불타는 목을 가라앉히려 숨을 몇 차례 깊이 내쉬었다.

“사막의 토끼들이랑 비슷하다면, 토끼가 한 마리 있다는 얘기는 가까운 곳에 여러 마리가 있다는 얘기지.” 포기할 줄 모르는 낙천적 태도가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토끼가 있던 곳을 향해 탈리야가 말했다.

탈리야는 토끼굴에서 눈을 떼고 계곡 저쪽의 움직임을 보기 위해 시선을 옮겨 눈에 난 자신의 자취를 훑었다. 그 너머 듬성듬성 나 있는 소나무 사이로 사원에 있는 한 남자를 보고 숨이 멎는 듯했다. 머리를 가슴 쪽에 숙이고 앉아 있는 남자의 검고 무성한 머리칼은 바람에 뒤엉켜 있었다. 자거나 명상 중인 듯했다. 탈리야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느 쪽이건 녹서스 인이라면 할 리 만무한 행동이었다. 그녀는 아까 만져보았던 사원 모서리의 거친 촉감을 기억해냈다.

뭔가 갈라지는 날카로운 소리 때문에 탈리야는 회상에서 깨어났다.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지진에 대비해 가만히 균형을 잡았으나 지진은 아니었다. 우르릉거리는 소리는 꾸준히 커지더니 단단히 뭉쳐진 눈이 바위 위를 굴러가는 무시무시한 굉음으로 바뀌었다. 산 쪽으로 몸을 돌린 탈리야는 자신 쪽으로 밀려오는 하얀 벽을 보았다.

재빨리 움직였으나 갈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더러운 얼음 아래 보이는 바위를 내려다보며 동굴에 안전하게 피신해 있을 토끼가 떠올랐다. 마음을 가다듬고 집중하며 바위의 거친 모서리를 끌어당겼다. 굵은 돌기둥들이 땅에서 솟아올랐다. 돌기둥들이 그녀의 머리 위로 우뚝 솟는 순간, 눈사태가 쾅 하고 돌 울타리를 덮쳤다.

눈은 새로 생겨난 비탈길을 따라 속도를 내며 아래쪽 계곡으로 반짝이는 파도처럼 쏟아져 내렸다. 탈리야는 치명적인 눈더미가 협곡을 채우며 사원을 뒤덮는 것을 보았다.

눈사태는 시작된 것처럼 순식간에 멈췄다. 적막한 바람마저 고요해졌다. 새롭게 밀려온 정적이 탈리야를 무겁게 눌렀다. 검고 무성한 머리의 남자는 얼음과 바위 더미에 파묻혔는지 보이지 않았다. 비록 자기 자신은 눈사태에서 무사했지만, 끔찍한 사실을 깨달은 탈리야의 속이 뒤틀렸다. 무고한 사람을 위험에 빠트린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를 산 채로 매장해 버렸던 것이다..

“대지모신이시여,” 탈리야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외쳤다. “제가 무슨 짓을 한 건가요?”

II

탈리야는 눈 덮인 비탈길을 빠르게 내려갔다. 때로는 미끄러지고 때로는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에 거꾸러졌다. 비록 사고긴 했으나. 처음 보는 아이오니아 인을 죽이려고 녹서스 함대로부터 도망친 건 아니었다.

“운도 지지리 없는 나니까, 거룩한 사람이었을 지도 몰라.”

계곡의 소나무들은 원래 크기의 반이나 될까 말까 한 막대기 같은 덤불로 변해 있었다. 사원의 꼭대기 부분만이 눈더미 밖에 나와 있었다. 협곡의 끝부분이었던 곳에 누더기가 된 축원 깃발들이 마구 뒤엉켜 있었다. 탈리야는 주위를 재빨리 둘러보며 자신이 얼음으로 밀어 넣은 남자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마지막으로 그를 본 건 사원의 처마 밑이었다. 그 처마가 그를 보호했을지도 모른다.

눈사태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들에 가까운 곳에서 눈더미를 뚫고 위로 올라온 두 손가락이 사원 쪽으로 달려가던 탈리야의 눈에 띄었다.

반은 터덜거리며, 반은 뛰며 창백한 손가락 쪽으로 나아갔다. “제발 살아있어 주세요. 제발 살아있어 주세요. 제발….”

탈리야가 무릎을 꿇고 차가운 눈가루를 파내기 시작했다. 눈 속에서 강철같이 강한 손가락을 찾아냈다. 자꾸 말을 잘 안 듣는 자신의 손을 뻗어 남자의 손목을 잡았다. 딱딱 맞부딪치는 이 때문에 온몸이 떨려 남자의 맥박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벌써 죽은 게 아니라면, 저를 좀 도와주세요.” 그녀가 눈에 파묻힌 남자에게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남자를 도울 이는 자기밖에 없었다.

탈리야는 손가락을 놓고 뒤로 몇 발짝 물러섰다. 마비된 손바닥을 눈 표면 위에 올려놓고 작은 계곡의 지형이 눈사태 전에 어땠는지를 떠올리려고 애썼다.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자갈. 흐릿하게 맴돌던 기억이 머릿속에 뚜렷이 나타났다. 아드난 삼촌의 수염처럼 군데군데 흰 무늬가 있는, 어두운 회색의 거친 바위였다.

떠오른 이미지를 머릿속에 단단히 고정하고 눈으로 뒤덮인 들판 깊숙이에서부터 끌어당겼다. 딱딱한 얼음 표면이 부서지더니 이내 화강암 띠가 솟아올라 남자를 받쳤다. 어느새 유연해진 돌 봉우리들이 흔들리며 그녀의 명령을 기다리는 듯했다. 안전을 확신하지 못한 채, 탈리야는 소나무 가지가 남자의 착지를 돕기를 바라며 화강암 띠와 남자를 앙상해진 소나무 쪽으로 밀었다.

화강암 띠는 소나무까지 닿지 못하고 큰 소리를 내며 눈 위로 떨어졌지만, 소나무 가지에 걸린 남자는 땅에 비교적 곱게 낙하했다.

“살아있었다면 지금에 와서 죽지 말아주세요.” 탈리야가 남자 쪽으로 황급히 가면서 말했다. 머리 위에서 햇빛이 흔들렸다. 시커먼 구름이 계곡 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곧 눈이 더 내릴 것이었다. 나무 너머로 작은 동굴의 입구가 보였다.

탈리야는 손의 떨림을 멈추려고 손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 넣었다. 그러고는 남자 쪽으로 몸을 구부려 그의 어깨에 손을 댔다. 남자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다. 탈리야가 몸을 빼내기 전, 번쩍이는 쇠붙이가 공기를 휙 갈랐다. 남자의 날카롭고 차가운 칼날이 그녀의 목에 바짝 닿았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니지.” 남자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남자는 기침을 하고 눈을 희번덕댔다. 칼은 눈더미로 내려놓았으나 칼자루는 놓지 않았다.

눈발이 탈리야의 튼 얼굴을 스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쉽게 죽일 수 있는 상대는 아니시네요. 그러나 이 눈보라에 다시 갇히면 어떻게 될지 또 모르죠.”

남자는 밭은 숨을 내쉬었으나 적어도 살아 있었다. 탈리야는 남자를 부축해 그를 작은 동굴 쪽으로 끌어당겼다.

적막한 바람이 돌아왔다.

III

탈리야는 몸을 굽혀 가공하지 않은 양모 타래와 같은 색과 크기의 동그스름한 돌멩이를 주웠다. 떨리는 몸으로 동굴 안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남자는 아직 눈을 감은 채 벽에 기대어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탈리야는 남자의 짐에서 찾은 마른고기 조각을 입에 넣고 그가 살아남더라도 나눠 먹은 사실에 화내지 않기를 빌었다.

탈리야는 따뜻한 동굴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녀가 쌓아놓은 바위 조각들이 아직 열기로 파르르 빛나고 있었다. 몸을 굽혔다. 주머니 속에서 돌멩이를 데우던 방법이 더 큰 바위에도 통할지 확신이 없었다. 눈을 감고 바위 조각들에 정신을 집중했다. 모래에 이글거리던 해와 그 열기가 대지 속에 깊숙이 파고들면 밤에까지 남아 있던 것을 기억했다. 주변에 훈훈한 온기가 도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긴장을 풀고 여몄던 외투를 풀러 손에 든 돌멩이에 집중했다. 그러고는 돌멩이가 우묵한 그릇처럼 속이 비게 될 때까지 머릿속에서 돌멩이를 돌리고 감싸고 밀어냈다. 탈리야는 만족스러워하며 새로 생긴 그릇을 들고 동굴의 입구로 돌아갔다.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 뒤에서 낮게 울렸다. “부스러기를 모으는 참새 같군.”

“참새도 목은 마르잖아요.”라고 대꾸하며 탈리야가 깨끗한 눈을 그릇 가득 펐다. 찬 바람이 윙윙대며 그녀를 맴돌았다. 탈리야가 그릇이 된 동그란 돌멩이를 앞에 놓인 뜨거운 바위 조각들 위에 올려놨다.

“손으로 돌을 모으는 건가? 바위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한테는 시시한 일일 텐데.”

작은 돌 난로와 무관한 열기가 탈리야의 뺨을 붉게 물들였다.

“화가 나신 건 아니죠? 그러니까 눈이랑 뭐 여러 가지로…”

남자는 웃더니 신음과 함께 옆구리를 잡았다. “내가 알아야 할 건 네 행동을 통해 다 알았어.” 앙다문 입가에는 미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날 죽게 내버려둘 수도 있었으니까.”

“내 실수로 당신을 위험에 빠트린 걸요. 당신을 눈에 파묻은 채 도망갈 생각은 없었어요.”

“고맙군. 나무에 떨어트리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탈리야가 찡그리다가 입을 열었다. 남자는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다. “용서를 빌 필요는 없어.”

그는 힘들게 몸을 일으켜 탈리야와 그녀의 머리에 있는 장신구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슈리마의 참새라.” 그는 눈을 감더니 돌 난로의 온기 속에서 긴장을 풀었다. “집에서 멀리 떠나온 작은 새로군. 아이오니아의 외딴 동굴까지는 어인 일이지?”

“녹서스 때문이에요.”

남자는 그대로 눈을 감은 채 짙은 눈썹을 치켜떴다.

“내가 녹서스의 사람들을 단결시킬 거라고 하더군요. 내 힘으로 녹서스의 성벽을 더 튼튼하게 할 거라고요. 그러나 그들은 사실 내 힘을 파괴에 이용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혐오감에 탈리야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들은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 준다고 했죠.”

“뭔가를 가르쳐 주긴 했군. 반쪽짜리 가르침이었지만.” 그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

“내게 마을 하나를 통째로 묻어버리라고 했어요. 집에 가만히 있는 사람들을 살해하라고요.” 탈리야는 참지 못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도망쳤는데 결국 당신을 산으로 덮쳐버렸군요.”

남자는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려 칼날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살랑 불어와 검에 쌓인 먼지를 털어냈다. “파괴. 창조. 그 어떤 것도 전적으로 좋기만 하지도 나쁘기만 하지도 않지. 파괴가 없으면 창조도 없으니까. 중요한 건 의도, 그러니까 ‘왜’ 그 길을 선택했느냐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진짜 선택이고.”

탈리야는 남자의 설교에 짜증이 나 벌떡 일어났다. “내 길은 이곳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요. 모든 사람에게서 떨어져 있어야 하죠. 내 안에 있는 것을 통제할 수 있을 때까지. 나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을 다치게 할지도 모르니까요.”

“새가 믿는 건 밑에 있는 나뭇가지가 아니야.”

탈리야는 듣기를 멈추었다. 이미 외투를 단단히 여미고 동굴의 입구에 가 있었다. 바람이 그녀의 귀에서 윙윙댔다.

“먹을 거를 좀 찾아올게요. 걱정 마요. 남은 산으로 당신을 덮치지는 않을게요.”

남자는 뒤에 놓인 따뜻한 돌에 기대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부드럽게 얘기했다. “작은 참새여, 정복하고자 하는 게 산이 확실한가?”

IV

새 한 마리가 근처의 야윈 소나무를 쪼아댔다. 탈리야는 눈을 차다가 부츠 안으로 눈덩이가 들어가 버렸다. 남자의 말과 발목에서 녹아 미끄러지는 눈에 화를 내면서 부츠를 추어올렸다.

“왜 그 길을 선택했냐니? 나는 가족과 우리 부족 사람들을 나로부터 보호하려고 떠나왔단 말이야.”

탈리야가 갑자기 멈췄다. 부자연스러운 침묵이 밀려왔다. 그녀의 쿵쾅거리는 발소리에 작은 사냥감들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탈리야에게서 아무런 위험도 감지하지 않았던 작은 새는 나뭇가지에 남아 그녀의 분풀이에 맞장구라도 치는 듯 짹짹거렸으나, 지금은 새의 노래조차 멈추었다.

탈리야가 조심스레 일어섰다. 화가 난 나머지 의도했던 것보다 동굴에서 멀리 와 버렸다. 나무보다 돌에 더 끌렸던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드러난 산등성이를 따라오다 보니 어느새 아래가 내다보이는 바위 절벽에 이르렀다. 남자가 따라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는 기척을 느꼈다.

“설교가 아직 남았어요?” 화가 난 그녀가 물었다.

돌아온 것은 살 떨리는 숨소리였다.

탈리야가 한 손은 외투 속에 넣고 다른 손으로 팔매를 잡았다. 돌멩이 세 개가 주머니 안에서 달그락거렸다. 자갈 소리로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무언가의 움직임을 알아챈 탈리야가 돌멩이 하나를 움켜쥐었다.

몸을 돌려 뒤에 있는 존재를 확인했다. 거대한 아이오니아 설산 사자가 험준한 바위 주변을 조심스레 거닐고 있었다.

튼튼한 네 발로 서 있을 때조차 사자는 그녀를 압도하는 몸집이었다. 몸의 길이는 탈리야의 키보다 2배는 가뿐히 넘어 보였고, 굵은 목은 황갈색 빛이 도는 하얀색 갈기로 덮여 있었다. 사자가 탈리야를 쳐다보았다. 사자는 죽인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토끼 두 마리를 입에서 떨구고 그녀의 팔뚝보다 더 큰 개의 피를 핥고 있었다.

방금까지 절벽에 서서 내려다본 경치는 황홀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곳에 갇힌 신세였다. 도망쳐도 순식간에 따라잡힐 것이었다. 탈리야는 속에서 밀려오는 두려움을 잠재우려 침을 꿀꺽 삼켰다. 팔매에 돌멩이 하나를 얹어 돌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떠나.” 공포에 질린 속내와 달리 그녀의 말투는 차분했다.

사자가 한 발짝 다가왔다. 탈리야가 돌을 날렸다. 돌멩이는 사자 갈기 근처에 맞았으나, 타격은 거의 털에 국한되었다. 사자는 노여움에 울부짖었고, 탈리야는 이 맹렬한 울음소리와 터질 듯한 자신의 심장 소리를 구분할 수 없었다.

탈리야가 다른 돌멩이 하나를 팔매에 얹었다.

“저리 가!” 탈리야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소리쳤다. “저리 가라고 했잖아!”

탈리야가 다음 돌멩이를 날렸다.

배고픈 사자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야윈 소나무에 있던 새는 여기 있어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는지 나뭇가지에서 뛰어올라 기류에 몸을 날렸다.

홀로 남겨진 탈리야는 마지막 돌멩이를 찾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몸을 타고 흐르는 공포와 추위로 손이 떨렸다. 손가락에서 미끄러진 돌멩이가 바닥에 떨어지더니 저편으로 굴러갔다. 탈리야가 올려다보았다. 한 걸음 더 다가오는 사자의 머리가 튼실한 근육이 잡힌 다리 사이에서 까닥거렸다. 돌은 딱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거리에 있었다.

손으로 돌을 모으는 건가? 남자의 말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어쩌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의식 속에서 돌멩이로 손을 뻗어 보았다. 돌멩이가 흔들렸으나, 발치의 땅도 같이 진동했다.

새가 앉아 있다 날아간 나뭇가지는 아직도 탈리야의 옆에서 떨리고 있었다. 새가 믿는 건 나뭇가지가 아니야. 선택은 분명했다. 의심하며 얼어붙은 채로 가만히 서서 사자가 덮치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자신의 힘을 믿고 한 번 도약해 보거나.

눈 덮인 아이오니아의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에서 태어난 탈리야가 떨리는 나뭇가지와 새의 이미지에 집중했다. 그 순간, 그녀는 곧 닥쳐올 죽음을 잊어버렸다. 그녀를 괴롭히던 외로움도 사라지고 모래 위에서의 마지막 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엄마, 아빠, 바바잔. 부족 모두가 자신을 에워싸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 돌아간다고 속삭였던 약속.

탈리야가 사자와 시선을 마주쳤다. “너 때문에 멈추기에는 포기한 게 너무 많아.”

발아래 돌멩이가 우아한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지기 시작했다. 탈리야는 부족민들과 마지막으로 따뜻하게 포옹했던 기억에 의지해 뛰어올랐다.

밑에서 사자의 울음소리보다 더 큰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자는 물러서려 했으나,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땅은 갈라지고 사자의 묵직한 발밑에서 자갈이 소용돌이치며 세차게 흘러갔고, 사자는 육중한 무게 때문에 무너져 내리는 절벽에 더 빨리 휩쓸려 갔다.

탈리야는 무너져 내리는 땅의 소용돌이 위에 잠깐 떠올랐다. 수천 개의 작은 조각으로 계속 쪼개지는 바위는 더는 통제 가능한 형태가 아니었다. 언제까지고 파괴를 계속할 수는 없음을 알고 있었다. 탈리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부서지는 주변의 거친 세계에 안녕을 고하기 직전에 강한 바람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강철 같은 손가락이 그녀의 외투 깃을 낚아챘다.

“산을 무너뜨린다는 말이 진심인 줄 몰랐다, 작은 참새여.” 남자는 끙끙거리며 막 튀어나온 바위 위로 탈리야를 끌어올렸다. “네 고향 사막 대부분이 평평한 이유를 이제 알겠군.”

탈리야의 속에서 웃음이 퐁 터져 나왔다. 남자의 잘난 척하는 목소리를 들어서 진심으로 기뻤다. 절벽 쪽을 바라보며 일어섰다. 몸에 묻은 먼지를 털고, 사자가 버린 토끼들을 주워 신나는 발걸음으로 작은 동굴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V

탈리야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의자에서 몸을 흔들거리며 여인숙을 둘러보았다. 늦은 밤, 나무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사람들 가까이에 있어 본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탈리야는 엄숙한 표정으로 어두운 코너에 앉기를 고집한 동행인 쪽을 쳐다보았다. 이제는 스승으로 모신 남자를 가까이 있던 사람이라 치기는 무리였다. 외딴 여인숙에서 밥을 먹기로 동의한 다음부터 계속 찌푸린 얼굴을 고수했던 남자에게서 동지애 같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확실해지자, 남자는 긴장을 약간 풀고 손에 음료를 든 채, 어두운 구석에 자리를 잡고 등을 벽에 기대었다. 걱정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다시 주의 깊은 눈을 탈리야에게 돌렸다.

“집중해야만 해. 망설이면 안 돼.”

탈리야는 찻잔 아래에서 소용돌이치는 찻잎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훈련은 어려웠고, 그리 잘 됐다고 할 수 없었다. 훈련이 끝날 무렵, 그들은 먼지와 부서진 바위로 뒤덮여 있었다.

“위험해지는 건 정신이 분산됐을 때야.” 그가 말했다.

“내가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도 있잖아요.” 남자의 목에 둘린 망토에 새로 난 찢어진 자국을 보면서 탈리야가 말했다. 자신의 옷들도 썩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새로 얻은 외투와 여행용 치마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를 딱하게 여긴 여인숙 주인아줌마가 예전에 손님이 두고 간 옷을 챙겨준 것이었다. 아이오니아 스타일의 긴 소매는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릴 듯했으나 질기고 풍성한, 잘 짠 옷감이었다. 그래도 고향을 떠올리는 마지막 물건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탈리야는 너무 해져서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단순한 튜닉을 버리지 않았다.

“부서진 것들은 다 고치면 돼. 통제는 연습을 통해 얻어지는 거지. 네 능력은 이것보다 훨씬 더 뛰어나. 네가 나아졌다는 것을 잊지 마.”

“그렇지만… 제가 실패하면 어떻게 해요?” 탈리야가 물었다.

남자는 시선을 여인숙 저편에서 열리는 문으로 옮겼다. 상인 둘이 긴 여행길에서 뒤집어쓴 먼지를 털면서 들어왔다. 여인숙 주인은 탈리야와 남자 가까이에 있는 빈 테이블을 가리켰다. 첫 번째 상인이 그리로 다가오는 동안, 두 번째 상인은 주문한 음료를 기다렸다.

“누구나 실패한단다.” 남자의 얼굴에 언뜻 짜증스런 기색이 비치더니, 그의 절제된 태도가 살짝 흐트러졌다. “실패란 그저 한순간일 뿐이야. 계속 노력하면, 그 순간도 지나간다.”

상인 한 명이 근처 테이블에 앉아 탈리야를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연보랏빛 튜닉에서 머리카락의 반짝이는 금과 돌 장신구로 옮겨갔다.

“얘야, 그거 슈리마 거 아니니?”

탈리야가 상인을 무시하려고 애썼다. 상인은 탈리야를 보호하는 남자의 눈빛을 느끼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넘겼다.

“한때는 귀했을지도 모르지.” 상인이 말했다.

탈리야가 자신의 손을 쳐다보았다.

“네 부족의 잃어버린 도시가 새로 세워진 지금은 그렇게 귀한 물건이 아니지만.”

탈리야가 올려다보았다. “뭐라고요?”

“소문에 따르면 강물도 거꾸로 흐른다는구나.” 상인이 공중에서 손을 흔들어 자신이 단순하다고 여기는, 멀리 떨어진 곳의 부족을 비웃으며 말했다. “그게 전부 너희 새의 신께서 무덤에서 돌아왔기 때문이지.”

“그게 뭐가 됐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무역을 위협하는 게 문제지.” 두 번째 상인이 첫 번째 상인이 있는 곳으로 오며 말했다. “그 신이 자신의 사람들을 모으려 한다는구나. 예전 노예를 그리워한다나 뭐라나.”

“네가 거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는 게 다행이구나.” 첫째 상인이 덧붙였다.

탈리야의 동행을 알아차린 둘째 상인이 마시던 맥주에서 눈을 뗐다. “당신, 낯설지가 않네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군요.”

여인숙 문이 다시 열렸다. 경비병 무리가 들어와 여인숙 안을 주의 깊게 둘러보았다. 대장인 게 확실한, 무리의 가운데 사람이 탈리야와 그녀의 동행에 주목했다. 몇 없던 손님들이 일어나 출구로 가는 것을 보며 탈리야는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다. 상인들도 일어나 나가버렸다.

대장이 빈 의자들을 헤치고 탈리야와 일행 쪽으로 다가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검 한 뼘 정도의 길이에서 멈추어 말했다.

“살인자.”

VI

“여기에 숨어 있었군.” 대장이 말했다. “마음껏 음미하도록 해. 네 마지막 음료가 될 테니까.”

옆에서 강철 검의 속삭임이 들리는 찰나, 탈리야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여인숙을 가득 채운 경비병들을 노려보는 자신의 스승을 바라보았다.

대장이 내뱉었다. “야스오라고 하는 여기 이 남자로 말할 것 같으면, 마을의 원로를 살해한 자다. 보는 즉시 사형에 처하는 처벌을 받았지.”

경비병 한 명이 화살을 장전한 석궁을 조준하였다. 다른 경비병 하나가 탈리야 만큼 큰 대궁의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나를 죽인다고? 뭐, 시도는 해보시든가.” 야스오가 말했다.

“잠깐만요.” 탈리야가 소리쳤다. 그러나 탈리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활시위를 당기는 소리와 대궁이 반향으로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지는 순간, 여인숙 안에 한바탕 돌풍이 몰아쳤다. 남자로부터 몰아친 이 바람은 테이블 위에 있던 잔과 나무 그릇들을 다 쓸어버리고 날아오던 화살들을 부러뜨렸다. 화살 조각들이 힘없는 소리를 내며 땅으로 맥없이 떨어졌다.

더 많은 경비병이 칼을 빼든 채 물밀 듯 들이닥쳤다. 밀려오는 경비병들을 막기 위해 탈리야는 뾰족한 돌들을 쭉 늘어뜨리고 마루에서 하나씩 끌어당겨 격렬하게 폭발시켰다.

야스오는 주점 안에 갇힌 병사들 사이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병사들이 무기를 빼 들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검의 공격을 받아치기 위해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야스오의 칼날이 남자들의 몸을 번개처럼 꿰뚫어 유혈 낭자한 회오리를 남겼다. 공격하러 온 사람들이 다 무너졌을 때 야스오는 잠시 멈추고 가쁜 숨을 억세게 내쉬었다. 그는 탈리야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말을 건네려 했다.

탈리야가 손을 들어 경고했다. 야스오의 뒤에서 대장이 광기가 번뜩이는 눈과 일그러진 미소를 띠고 일어섰다. 대장은 피가 흥건한 칼자루를 두 손으로 잡고 칼을 휘둘렀다.

“그에게서 물러나!” 탈리야가 여인숙의 자갈이 깔린 바닥에서 돌을 끌어내 평평한 바닥이 무너지고 대장이 균형을 잃었다.

야스오는 휘청대는 대장의 몸을 상대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차가운 칼날이 대장의 가슴을 재빠르게 세 번 갈랐다. 대장은 마루에 그대로 떨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밖에서 더 많은 함성이 들렸다. “지금 떠나야 해. 당장.” 야스오가 탈리야를 바라보며 말했다. “할 수 있어. 주저하지 마.”

탈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가지붕이 떨릴 때까지 바닥이 우르릉 소리를 내고 벽이 흔들렸다. 탈리야는 여인숙의 바닥 밑에서 커지는 힘을 조절하려 애썼다.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엄마가 노래하며 옷감의 단을 고르게 꿰매고 있었다. 엄마의 손은 움직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여인숙 아래에 있던 바위가 커다란 호 모양으로 분출했다. 땅에서 나온 돌기둥들이 파도처럼 서로 엮였다. 탈리야는 대지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대지를 타고 밤하늘 속으로 날아갔다. 야스오가 세찬 바람이 되어 바로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VII

야스오가 멀어진 여인숙을 돌아보았다. 둥글게 엮인 돌들이 길을 봉쇄해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다. 시간을 좀 벌긴 했으나, 새벽이 곧 올 것이었다. 새벽이 오면 더 많은 이들이 그들을, 아니 그를 쫓을 것이었다.

“그들이 당신을 알던데요.” 탈리야의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야스오.” 탈리야가 야스오의 이름을 힘주어 말했다.

“계속 도망쳐야 해.”

“그들이 당신을 죽이려 했어요.”

야스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를 죽이려는 사람은 많아. 이제 몇 사람은 너도 죽이려고 할 거야. 중요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이 말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어.”

“나도 알아요.”

그가 여행 중에 댔던 이름은 야스오가 아니었으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같이 여행하는 동안 탈리야는 그의 과거를 묻지 않았다. 사실 탈리야는 가르침을 달라는 것 외에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탈리야는 스승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신뢰가 그에게는 고통스럽기까지 한 것 같았다. 아마 유죄라 믿은 것보다도 더 고통스러웠는지도 모른다. 야스오는 탈리야에게서 몸을 돌려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슈리마는 서쪽이에요.” 탈리야의 목소리에서 당혹스러움이 배어났다.

야스오는 탈리야를 마주 보지 않았다. “내가 갈 곳은 슈리마가 아니야. 너도 아직은 갈 때가 안됐어.” 다가올 폭풍에 단련하는 것 같이 차분하고 절제된 말투였다.

“상인들 얘기를 들었잖아요. 잃어버린 도시가 다시 나타났다고요.”

“상인들을 겁먹게 하고 슈리마의 옷감 가격을 올리려는 이야기지.”

“만약 살아있는 신이 모래 위를 걷는다면요? 당신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죠. 신은 그가 잃은 것을 되찾을 거예요. 그에게 복종했던 사람들, 부족들...” 그날 밤에 일어났던 일들로 탈리야의 목이 멨다. 하고픈 말들이 흘러넘쳤다. 가족과 부족을 보호하기 위해 이렇게나 멀리 왔는데, 막상 그들에게 자신이 필요할 때 전혀 다른 세계에 있다니. 그녀가 팔을 뻗어 야스오의 팔을 잡아당기려 했다. 그가 자신의 말을 듣고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내 가족을 노예로 삼을 거라고요.” 탈리야의 말이 주변의 바위에 메아리쳤다. “나는 그들을 보호해야만 해요. 이해 못하겠어요?”

바람이 일어 땅의 돌멩이들이 흐트러지고 야스오의 검은 머리가 그의 얼굴에 나부꼈다.

“보호.” 그의 목소리는 속삭임보다도 작았다. 야스오는 이내 앙다문 입술로 내뱉었다. “위대한 바위술사님은 그들을 지켜주지 않는 건가?” 탈리야의 스승, 야스오는 그의 유일한 제자 쪽을 쳐다보았다. 그의 어둡고 걱정 어린 눈에 분노가 번뜩였고, 이 격한 감정의 동요에 탈리야는 놀랐다. “네 훈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들에게 돌아간다면 네 목숨이 위험할 거다.”

탈리야는 꼿꼿이 서 그를 마주 보았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기꺼이 바칠 수 있어요.”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그들을 에워쌌으나 탈리야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야스오가 깊은 한숨을 쉬더니 다시 동쪽을 쳐다보았다. 검푸른 밤에 빛이 어슴푸레 비치기 시작했다. 사납게 몰아치던 바람도 잠잠해졌다.

탈리야가 말했다. “같이 가셔도 돼요.”

남자의 격앙된 표정이 조금 풀렸다. “사막 벌꿀 술이 꽤 맛있다는 소린 들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탈리야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고통스러운 기억이 그 자리를 채웠다. “하지만 나는 아이오니아에 볼 일이 남았어.”

탈리야는 그를 주의 깊게 살펴보다가 튜닉 안에 손을 넣어 긴 실 한 올을 끊었다. 그녀는 손으로 짠 양모를 그에게 주었다. 야스오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이를 바라보았다.

“감사를 표시하는 우리 부족의 전통이에요.” 탈리야가 설명했다. “자신을 한 조각 내어 주며 나를 기억해 달라는 얘기죠.”

남자는 조심스레 실을 받아 자신의 흩날리는 머리칼을 묶었다. 그러고는 신중하게 말을 건넸다.

인적이 별로 없는 사슴이 다니는 길을 가리키며 야스오가 말했다. “이 길을 따라 다음 강의 계곡과 저 강을 지나 바닷가로 가거라. 그곳에 가면 낚시하는 여인이 있을 거다. 프렐요드를 보고 싶다고 말하고 이걸 주렴.”

야스오는 허리띠의 가죽 주머니에서 마른 단풍나무 씨앗을 꺼내 탈리야의 손에 쥐여 주었다.

“혹한의 북쪽 땅에는 녹서스의 지배에 대항하는 부족이 있다. 그들과 함께라면 사막으로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다.”

“프렐요드...라는 곳에는 뭐가 있나요?” 처음 입에 올리는 말을 신기해하며 탈리야가 말했다.

“얼음이 있지.” 야스오가 찡긋 윙크를 하며 덧붙였다. “돌도 있고.”

이제 탈리야가 웃을 차례였다.

“산들이 아래 있으면 빨리 움직일 수 있을 거다. 네 힘을 사용하렴. 창조. 파괴. 그 전체를 다 포용하도록 해. 네 날개가 여기까지 너를 데리고 왔잖니. 마침내 고향으로 데려갈지도 모르지.”

탈리야는 강의 계곡으로 가는 길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부족이 안전하기를 빌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위험이 그야말로 상상일 수도 있었다. 지금 그들이 나를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나를 알아볼 수는 있을까? 바바잔은 실의 색깔이 어떻든, 물렛가락 위에 완성된 옷감이 얼마나 두껍든 얇든, 털실은 언제나 처음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간직한다고 했었다. 이 말을 기억해낸 탈리야는 안도했다.

“돌을 딱 맞게 다스리리라 믿는다. 무사히 가렴, 작은 참새야.”

탈리야가 몸을 돌렸으나, 야스오는 이미 떠나버린 후였다. 새롭게 밝은 아침의 공기 속에 흔들리는 풀 몇 포기만이 그의 흔적을 나타낼 뿐이었다.

“위대한 바위술사님께서는 틀림없이 당신을 위한 계획도 있으실 거예요.” 탈리야가 말했다.

탈리야는 조심스레 단풍나무 씨앗을 외투 속에 집어넣고 계곡의 길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발치의 돌들이 그녀를 맞아 힘차게 솟아올랐다.

스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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