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의 심판 - 15회 카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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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챔피언명 : 카르마
  • CLE 21년 1월 28일


관찰

양 어깨에 날개라도 돋은 듯, 카르마가 위엄 있는 태도로 들어선다. 머리에서부터 드레스의 가장 마지막 단까지, 어딜 봐도 흠 잡을 데 없는 아이오니아의 귀족이다. 리그의 장인들이 대전당을 위해 공들여 제작한 섬세한 장식에 감탄하며, 그녀는 문턱에 멈춰 선다. 대전당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닐 텐데, 장식으로 향하는 눈길 하나하나에 경탄이 깃들어 있다. 복도를 지나가는 걸음마다 우아함이 스며들어 공기의 흐름마저 바꿔 놓는 듯하다.

대리석 문에 이른 카르마가 문틀을 어루만지자, 그 고상한 몸짓에 지지 않으려는 듯 부드럽게 문이 열린다. 그리고 아치를 지나 카르마의 모습이 사라지자, 방 안은 왠지 텅 비어 버린 듯 쓸쓸해진다.


회고

학회를 장식하고 있는 이 정교한 예술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카르마는 늘 전쟁터의 혼돈이 떠오르곤 했다. 그녀에게는 장식에 파인 홈 하나하나가 목숨을 잃은 친구의 얼굴처럼 보였다. 죽어간 동지들도 자기처럼 눈길 닿는 곳마다 동포들의 모습을 떠올릴까 생각해 보는데 문득 매캐한 악취가 풍겨 왔다. 놀라 뒤돌아 선 순간 밝은 녹색 빛의 폭발이 그녀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반사적으로 폭발이 일어난 쪽으로 강철로 만들어진 부채를 휘둘러 보았지만, 퍼져 나오는 연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충분히 빠른 대응을 하긴 했으나, 부채로 막기엔 기세가 너무 컸던 것이다. 세찬 바람을 맞으며 카르마는 모든 감각을 내면에 집중시켰다.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정신 없이 소용돌이쳤지만 자세는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윽고 폭발이 가라앉자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던 머리카락은 사정 없이 헝클어지고, 옷도 흙 범벅이 된 채 찢겨져 나가 있었다.

흙에서 심상치 않은, 자극적인 냄새가 났다. 피 냄새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며 위를 바라 보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이런 광경은 볼 준비가 미처 되어 있지 않았다. 안돼, 안돼. 또 다시 이럴 순 없어. 눈에 들어오는 건 전부 아이오니아 인들의 흩어진 몸뚱아리 뿐이었다. 다시 한번, 멀리서 녹색 빛의 폭발이 터져 나왔고 허공에 사체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내던져졌다. 입술에서 짠 맛이 느껴졌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 것조차 미처 깨닫지 못한 그녀 앞에 신발 하나가 보였다. 어른이 신기에는 너무나 작은 그 신발이, 땅에서 솟아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흙 속에 파묻힌 작은 다리 하나가 보였다.

카르마는 부채로 허공을 가르며 즉시 자세를 바로 했다. 피에 범벅이 된 눈물과 흙이 주위로 흩뿌려졌다. 그리고 모든 게 가라앉고 나자 그녀는 변해 있었다. 감정을 비운, 어둡지만 침착한 두 눈. 상상도 할 수 없는 공포의 현장에 서 있는 그녀는 강력하고 고결한 존엄의 화신으로 변모했다. 카르마는 저 멀리서 낄낄대는 형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실루엣은 자운의 미친 화학자 워윅이었다. 워윅은 딱정 벌레 모양의 무장한 기계 꼭대기, 빛을 발하는 조종석에 앉아 폭발이 아이오니아의 대지를 내리칠 때마다 열정적으로 손을 휘둘러댔다. 늑대인간이 아닌 인간 시절의 모습이었지만, 카르마는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그녀는 생각도, 감정도 뒤로 한 채 자신의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멈출 태세를 갖추었다.

그 때 자운의 기습부대가 결집하더니 그녀의 앞길을 가로 막았다. 하지만 부채가 허공을 가르자, 울부짖는 돌풍에 모든 소리가 묻힌 채 그들은 날아가 버렸다. 카르마를 발견한 워윅은 기뻐하며 조종판 위에서 춤추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그가 타고 있던 기계에서 대포가 뻗어 나와 역겨운 녹색 액체 줄기를 내뿜었고 카르마의 위쪽 허공에서 마치 불꽃처럼 터져 나갔다. 머리 위로 부채를 내뻗은 카르마는 흘러내리는 액체를 조금 튕겨 냈지만, 생각보다 많은 액체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주위로 액체가 비처럼 흘러내렸다. 살갗에 액체가 닿자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살이 타 들어갔다. 카르마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맛있지 않나, 공작 부인?” 

워윅이 외쳤다.

“대기 부식성 지뢰라고 불리는 놈이지. 수은보다 몇 배는 비중이 커서 당신이 부리는 그 바람 마법으로는 막을 수가 없을걸.”

카르마는 바닥에 구겨지듯 추락했고 산성액이 그녀의 살을 파고 들었다. 몸을 일으켜 세운 그녀는 다리를 꼬고 명상 자세를 취했다. 타는 듯한 고통을 참아 내며, 그녀는 회복의 만트라를 외웠다. 고통이 조금 잦아 들었으나,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원래는 그런 식으로 공중에 쏘아버리는 게 아니야. 방금 그건 맛보기 용이었어. 이걸 당신에게 직접 쏘아 버리면, 그 섬세한 ‘무기’가 무용지물이 될까봐 걱정이 돼서 말이지.”

그 때 조종판에서 깡통이 부딪히는 것 같은 목소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재잘거렸다. 워윅이 잠시 귀를 기울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당신과 좀 더 놀아주고 싶지만, 내 서비스를 기다리는 아이오니아 인들이 너무 많네.” 

워윅이 조종판을 조작하자 대포가 아래로 향하며 정확히 그녀를 겨냥했다.

“이제 끝내야겠어.”

카르마는 눈을 깜박였다. 손상된 온 몸에서 신경이 반응하며 보내오는 신호에 두뇌가 마비되어 왔다. 아직 깨어있는 인식의 표면에는 단 한가지 생각만이 떠돌아 다녔다. 실패해 버렸어.

그렇게 주위에 널부러진 다른 이들과 같은 운명을 기다리고 있을 때, 하늘에서 눈을 멀게 할 정도로 밝은 빛의 광선이 뻗어 나와 정확히 워윅을 향했다. 살갗이 녹아 내리면서 워윅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몸이 뒤틀리며 근육이 불거져 나왔고, 머리와 사지가 길게 늘어졌다. 관절이 확 잡아 당겨지며 새로운 관절이 생겨나고 손가락과 발가락 끝에서는 기다란 발톱이 자라났다. 누군가가 사정 없이 잡아 당기는 듯, 워윅은 앞뒤로 몸부림쳤다. 발작이 잦아들자, 그의 척추는 길게 구부러져 있었다. 째질 듯 높았던 비명 소리는 짐승의 소리로 바뀌었고 몸은 파란색의 털로 뒤덮였다. 그렇게 바닥에 쓰러져 버린 워윅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이윽고 빛도 사라졌다.

멀지 않은 진흙탕 안에 새로운 형상이 보였다. 여전히 그녀를 좀먹어 들어가는 고통에 저항하며, 카르마는 그 형상 쪽으로 간신히 발걸음을 옮겼다. 앞에는 아이오니아 인들의 영적인 우상 소라카가 누워 있었다. 자신의 신성함을 나타내던 천상의 광휘를 잃어 버린 별의 아이는 공허하게 하늘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깊은 회한 속에 문득 이성을 찾은 카르마는 자신이 환상을 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소라카의 시선이 카르마에게 향했다. 영혼을 꿰뚫는 듯한 시선이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리그에 들어오려는이유가 뭔가, 카르마?” 

체념한 듯 슬픈 목소리였다.

“이 환상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까?” 

고통은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이것들은 진정으로 끝난 것이 아니지요. 절대 끝나지 않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절대 방심하지 않고, 항상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것뿐입니다.”
“타고난 연설가시군.” 

소라카가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니 기분이 어떤가?”
“당신들과 기꺼이 나누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당신들이 묵인해 왔던, 우리의 고통을 본 기분은 어떤가요?”

돌연, 카르마는 학회의 대기실에 홀로 서 있었다. 리그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려 있고, 옷은 학회에 막 들어설때처럼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빠르게 평정을 되찾은 카르마는 당당하게 그 문 안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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