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의 심판 - 7회 스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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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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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인이 목을 한껏 뒤로 젖히고 웅장한 문 위에 새겨진 글귀를 읽는다.

“진정한 적은 그대 안에 있나니.”
 “별나기도 하군.”

일견 연약해 보이는 겉모습에 비해 스웨인의 목소리는 놀랄 만큼 정력적이다. 깃이 빳빳하고 자로 잰 듯 몸에 딱 들어맞게 재단된 제복은 군복이라기보단 오히려 로브 같아 보인다. 지팡이를 짚고 삐딱하게 서 있지만, 그렇다고 온 체중을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진 않다. 제집인 양 어깨 위에 앉아있는 이상하게 생긴 까마귀조차 마치 그와 한몸인 듯 어색한 데가 없다. 어쩌면 방금 그 말도 까마귀를 향하는 것인 듯도 싶다.

“그럼 리그는 내 진정한 적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어디 알아볼까?”

까마귀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스웨인이 능숙한 동작으로 지팡이의 손잡이 부분을 들어 앞에 놓인 문을 똑똑 두드린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그 틈으로 칠흑같이 어두운 실내가 드러난다. 문의 양옆에 조각된 표범들이 안쪽으로 들어가도록 안내한다. 문 안으로 들어서는 스웨인의 얼굴에 능글맞은 웃음기가 감돈다.

회고 녹서스와 데마시아 사이에 처음 ‘사건’이 터진 것은 강력한 두 도시국가가 휴전 협정서에 서명한 지 채 몇 년도 흐르기 전이었다. 실패로 돌아간 작전 도중 적을 처형하려던 바로 그 순간으로 스웨인은 돌아와 있었다. 어린 왕세자가 다가올 시련은 짐작도 못 한 채 이쪽에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연단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스웨인의 손에 들린 독화살을 재운 마법공학 활의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인상적이군. 이렇게 사실 같을 줄은 몰랐어.”

스웨인은 데마시아 왕족들이 내려다보이는 어둑어둑한 발코니를 차분히 훑어봤다. 차가운 밤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그는 숨을 고르며 깊이 심호흡을 했다.

“게다가 정확하기도 하고 말이야. 이거 환상적일 정돈데.”
 “뭐가 말이냐, 벌레 같은 녀석?”

위엄 어린 음성이 그를 조롱했다. 다름 아닌 데마시아의 귀감, 왕세자 자르반 4세가 발코니에 서 있었다. 존재감만으로도 스웨인을 위압하는 듯했다. 자르반은 더 이상 스웨인이 잡으려고 출동했던 그때의 열세 살 어린 왕자가 아니었다. “다리는 어떠냐?”

“그것까지 알고 있나. 대단하군.”

스웨인이 지팡이를 턱밑으로 들어 올리며 평했다.

“안타깝지만 나한텐 통하지 않는다, 소환사여. 이 정도면 충분해.”

자르반이 놀라서 멍한 표정을 지으며 약간 어리둥절해했다.

“난 게임을 하는 자가 아니다.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사람이지. 지금 내 눈앞에 재현시킨 이 작전 중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진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다. 내 신체적 약점을 진심으로 어떻게 여기는지도 잘 알 테고. 내 기억을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파헤친 걸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 잘 알고 있을 텐데.”

스웨인이 즐거워하며 자르반에게 웃어 보였다.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이 정도로 리그에 참가하기 위해 챔피언이 갖춰야 할 전제조건 중 적어도 반은 충족시켰을 테지.”
“그런가?”

자르반이 아까보다 위엄을 뺀 음성으로 물었다. 표정조차 데마시아인다운 느낌이 상당히 사라져 있었다. 그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당신의 힘은 인정합니다. 녹서스의 스웨인.”

데마시아 왕세자는 이제 스웨인 앞에 없었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이제 보라색 소환사 로브를 걸친 빼어난 미모의 원숙한 여인이 있었다. 로브는 스웨인이 평생 보았던 그 어떤 로브보다 화려하고 아름답게 치장돼 있었다. 여성 소환사가 가볍게 절했다.

“하지만 리그에게도 그에 합당한 정중한 예우를 부탁하고 싶군요.”

스웨인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임의원 베사리아 콜민예님, 영광입니다. 의원님처럼 높은 지위의 소환사가 직접 심사를 하실 줄은 몰랐군요. 의원님께서 친히 절 전장으로 소환해 주실 기회가 혹 있을까요?” 스웨인은 상임 의원과의 이 대화를 즐기고 있는 티가 역력했다.

“익히 알고 있지만 참 매력적이시군요. 전략의 대가여.”

상임 의원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다시 한 번, 예의를 지켜주시길 부탁하겠습니다.”

스웨인이 과장스런 동작으로 지팡이를 차내며 깊숙이 허리 숙여 인사를 올렸다.

“물론입니다, 제 진심을 담지요.”

녹서스인이 지팡이를 꽉 쥐며 몸을 똑바로 폈다.

“소환사와 마음을 나눈다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으시겠죠. 아시겠지만 그런 관계를 다루는 건 제게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절 불러내는 소환사에게 제 비밀이 낱낱이 드러나게 되겠지만, 리그에서 그걸 이용해 절 공격하는 일은 없으리란 것도 잘 압니다. 신의를 어긴다는 건 리그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 될 테니까요… 특히 리그에 고객 도시국가들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한 근래와 같은 긴장의 시기에는 특히 더 그렇지 않겠습니까.”

상임의원 콜민예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하군요, 맞는 말씀이시구요. 소환이란 끈으로부터 얻게 된 지식은 챔피언과 소환사 사이에서만 지켜져야 할 사적인 영역입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건 없습니다.”

“의원님도 마찬가집니다.”

스웨인이 콜민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다시 고개 숙여 절했다. 둘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깨며 상임의원이 입을 열었다.

“리그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뭔가요, 제리코 스웨인?”

이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며, 스웨인의 얼굴에서 심판 내내 짓고 있던 가벼운 웃음기가 드디어 사라졌다. 그는 상임의원 콜민예의 눈을 정통으로 응시하며 답했다.

“물론 녹서스의 다음 통치자가 되기 위해서지요.”

스웨인이 지팡이의 손잡이 부분을 들어 상임의원을 가리켰다.

“그러기 위해 리그는 내게 협조해야 할 거요.”
“리그는 발로란 도시국가들의 일에 대해서는 사사로이 편을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스웨인이 집게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댔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않습니까… 아닌가요, 베사리아?”

상임의원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래요, 압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 노력하여 영향력을 얻어야 할 겁니다. 쉽게 얻어지진 않을 거에요.” 

상임의원이 아주 희미하게 코웃음 같은 것을 쳤다.

“특히 당신은 더하겠지요.” 

그녀의 두 눈은 마치 시뻘겋게 달궈진 숯불처럼 빨갛게 빛났다.

“그게 다는 아니잖습니까, 그렇지요, 전략의 대가여?”

스웨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습니다. 이 심판이라는 거… 일종의 의식 같은 거로군요.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그가 상임의원의 왼쪽 귀 쪽으로 슬쩍 몸을 기울여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갔다. 스웨인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했지만,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또렷이 울렸다.

“난 자르반 4세를 죽이고 싶소. 그 데마시아의 귀감 말이지.”

그가 상임위원의 귓가에서 싱긋 미소 지었다.

“반드시 죽여버릴 거요, 베사리아.”

상임의원 콜민예의 두 눈이 마지막으로 스웨인의 시선과 얽혔다. 그녀가 오른손을 뺨으로 들어 올렸다.

“어디 두고 봅시다, 제리코.”

둘에게로 빛줄기가 쏟아져 내리더니, 스웨인은 방 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그의 앞에는 아까와는 다른 한 쌍의 문이 이미 열려 있었다. 리그는 이제 막 새로운 챔피언을 찾아냈다.


날짜

CLE 20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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