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의 심판 - 16회 마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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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뒤틀린 숲이 광포함에 휩싸인다. 묘목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펑펑 터져, 비전 에너지가 뿜어내는 무지갯빛 광채로 시야가 어지럽다. 뿌리를 지표 위로 들어올려 움직이며 시야에 포착되는 것들은 죄다 공격하는 나무 한 그루를 제압하려고 리그 챔피언과 소환사들이 전부 전장을 정신 없이 뛰어다니고 있다. 갑자기 인지 능력이 생겨 혼란에 빠진 나무는 자기도 모르게 비전 마법의 폭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폭풍은 이 신록의 존재에게 쏟아진 마법 공격과 물리 공격을 모두 흡수하며 커져 가더니, 돌연 여기 있는 모두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만큼 커다란 폭발을 일으킨다.

갑자기 밝은 주황색 빛이 사방을 뒤덮더니, 케일이 나타나 이 빛의 보호막으로 모두의 목숨을 구해낸다. 먼지가 가라앉자 리그 대표들이 흙으로 빚은 반구형 감옥에 갇힌 나무의 모습이 보인다. 전쟁 학회는 조사를 위해 생명체를 즉시 다른 곳으로 이송시킨다.


회고

마오카이는 사방을 그대로 비추는 연못이 자리잡고 있는, 마치 동굴과도 같은 널찍한 방에서 정신을 되찾았다. 방 한가운데는 풍성한 보라색 로브를 입은 여인이 서 있고, 연못에 반사되는 빛이 춤을 추듯 일렁이며 그녀를 비췄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경탄에 빛나는 눈으로 나무 정령을 바라보던 여인은 깊이 고개를 숙여 절했다.

“저는 당신이 리그에 참가할 수 있을지 심판하러 온 사람입니다.”

마오카이는 노호했다.

“심판이라고? 너희 인간들은 나를 깨워 이런 혐오스러운 괴물로 만들어 놓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심판까지 하려 드는가?”

소환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곤 팔을 들어올려 속삭이듯 주문을 외우자 발 아래 땅이 꿈틀거리더니 방이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넓디 넓은 숲 속에서 깨어난 마오카이는 친숙한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었다. 잎사귀는 오색빛깔로 아름답게 반짝이고 둥치는 굳건한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한 이 곳은 영겁의 시간 전에 존재했던 그의 고향이었다. 오래 전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에 마오카이의 마음이 저릿했다. 갑자기 주위의 땅이 폭발하며 마오카이를 감싸고 있던 대지가 가라앉더니 기괴하게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눈에 닿는 초목들이 소름 끼치는 쉭쉭 소리와 함께 녹아 내리질 않는가! 비처럼 쏟아지는 총탄과 화학 물질 아래로 인간들이 공포에 질려 숲 속을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그때, 유탄에 맞은 한 소년이 땅에 털썩 쓰러졌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아비규환에 누구 하나 소환사마오카이를 거들떠 보지 않았지만 소년만은 둘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다. 그 눈에서 생명의 빛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다시 한번, 마오카이 발 밑의 지형이 변화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 속도가 빨라져 종국엔 흐릿해졌다. 새로이 자각하게 된 그의 감각을 공격해 오는 주위 풍경을 바라보며 마오카이는 전율했다. 산성액 웅덩이 속에서 녹아가는 나무들의 매캐한 향, 아름다운 하늘빛 섬이 세 조각으로 분열되는 모습. 백색 석영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고대 도시는 시공간의 법칙을 거스르며 말도 안 되는 형태로 뒤틀려 버렸다.

마오카이는 지쳐서 눈을 감았다. 리그에서는 지금 이 환상을 새로운 것이라 여기고 만들어낸 모양이지만, 실상 이 모든 것을 고스란히 느끼며 그 자리에 서 있던 그다. 대지와 그 안에 살아가는 생명들에게 가해진 학대가 빚어낸 고통과 슬픔을 흡수하며 몇 세기를 버텨 왔던 것이다. 소환사는 빠르게 명멸하던 환상을 엄숙하게 멈추고는 조용히 말했다.

“이런 일들은 우리가 원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악한 자들이 때문에 겪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부디 리그에 합류하셔서 이런 일을 막을 수 있게 도움을 주십시오.”

마오카이는 역겨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걸 초래한 게 바로 너희 인간들이다. 너는 지금 너희 종족에게 연민을 품어 달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에겐 너희 스스로 자초한 증오밖에는 보이지 않아.
 너희 눈에는 무기에 맞아 유린당한 인간 아이가 보이겠지만, 나는 쓰러진 나무들이 인간의 손에 의해 파괴의 도구로 탈바꿈한 것이 더 아프다. 내게는 너희가
존재하기도 전에 있어 왔고, 너희들의 하찮은 싸움에 고통 받으면서 너희가 사라진 뒤에도 존재할 이 땅이 보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돌아가길 원하시는 건가요?” 

그녀는 물었다. 나무 정령은 잠시 멈칫하더니, 그런 자신에게 오히려 더욱 놀라움을 느꼈다.

“아니면 당신이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생각하며, 그대로 서 있기만 할 건가요?”

비난이 담긴 소환사의 목소리에 마오카이는 잠시 머뭇거린 데에 화가 치솟았다.

“너희들의 전쟁은 나와 하등 상관이 없다. 너희들은 나를 깨워 인간이 겪고 있는 고통을 알려주려 하지만, 너희가 나에게 이런 저주를 내리기 이전부터 이미 인간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을 알고 있었단 말이다. 
대지는 너희 아이들의 피를 빨아들이면서 고통에 울부짖는다. 나는 너희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오랫동안 이 모든 것을 이겨내 왔다. 대지의 종족인 우리는 아무 것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생사에 관여할 이유도 없어.”

소환사의 두 눈이 어두워졌다. 리그가 원하는 답변이 전혀 아니었지만 다른 답을 얻을 가능성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나에게 약속한 대로, 너희가 나를 원래대로 돌려 놓을 때까지는 이 길을 가려 한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얼핏 미소라고 할 만한 표정이 나무의 입가를 살짝 뒤틀어 놓았다.

“그 때까지는, 너희가 친절하게도 나에게 선사해 준 이 손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자에게 벌을 내리도록 하지.”

이 대답에 평정을 찾은 소환사는 두 손을 들어 환상을 쓸어내 버렸다.

“잘 알겠습니다. 그게 당신의 대답이군요.” 

그녀는 빙글 돌아서더니, 아무 말 없이 떠나 버렸다. 마오카이는 무표정하게 그녀가 떠나는 것을 지켜 보았다. 환상 속에서 봤던 어린 소년의 몸은 사라졌지만, 피는 그대로 흘러내려 바닥에 웅덩이를 이루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나무 정령은 피 웅덩이를 지나쳐 걸어가다 돌연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마오카이는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그의 뿌리 한 움큼을 뜯어 내어 피 웅덩이에 조심스럽게 담갔다. 뿌리는 서서히 피를 흡수하기 시작하더니,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필사적으로 피를 빨아들였다. 그리곤 한 데 얼기설기 뒤엉키더니 이윽고 어린 묘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묘목은 순진한 눈으로 마오카이를 올려다 보았다.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이라. 태고부터 존재해 온 나무의 마음 속에서 뭔가 꿈틀했지만, 그 정체가 뭔지는 그도 전혀 알 수 없었다. 언젠가 다시 땅에 뿌리를 내린 채 움직이지 않는 날이 돌아오겠지만, 그렇다 해도 다신 예전과 같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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