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의 심판 - 14회 레넥톤

게임세상 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Renekton.png


관찰

야수와 같은 피조물이 먹잇감을 찾는 양 정신 없이 두리번대며 복도로 튀어 들어온다. 멀리 자운에서부터 끈질기게 추적해 온 냄새가 그를 바로 이 곳 전쟁 학회까지 이끌었다. 절대 착각할 수 없는 그 진한 내음이 여기 이 곳, 대전당에 진동하고 있다.

갑자기 분노에 휩싸여 네 발로 털썩 바닥을 딛자, 레넥톤의 거대한 무기가 요란하게 대리석 바닥에 부딪친다. 이 냄새가 어디서 풍겨오는 건지 휙휙 둘러보는 눈엔 오싹한 광기가 서려 있고, 거칠게 움직이는 온 몸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다.

돌연, 레넥톤이 똑바로 일어서더니 단숨에 검을 낚아채고는 돌로 된 아치로 둘러싸인 문으로 저돌적으로 달려든다. 거대한 몸집에서 터져 나온 갑작스러운 그 동작에, 문은 손이 닿기도 전에 먼저 벌컥 열린다. 먹잇감이 가까이 있다는 확신이 든 레넥톤은 발걸음을 늦추지도 않고 그대로 돌진한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친형, 나서스를 노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괴물이 미처 알지 못하고 있는 단 한 가지는, 운명의 순간에 형을 낚아채갔던 그 날 소환술의 진짜 목표는 형이 아닌 자신이었다는 사실이리라.


회고

엄습해 오는 현기증에 비틀거리던 레넥톤은 문득 다시 굳건한 대지를 딛고 서 있음을 깨닫는다. 발 밑이 푹 꺼져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느라 속이 다 뒤집힐 지경이다. 주변이 아직도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이 눈앞이 온통 흐릿해서 급히 눈을 깜박여 본다. 망설이듯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빛의 기둥 밖으로 나오자, 그제서야 이 곳이 낯선 숲을 내려다보며 우뚝 솟은 석조 단상이었음을 깨닫는다. 짙은 나무 향내, 활활 타는 횃불, 마법의 기운이 대기에 떠돌고 있다. 레넥톤은 도무지 어째서 이런 곳에 와 있는 건지 어리둥절해서 주위를 찬찬히 살핀다. 고민에 빠진 듯한 신음 소리는 필시, 저 멀리까지 퍼져나갔으리라.

갑자기, 틀림없는 형의 냄새가 근처에서 풍겨와 코를 감돌고 지나간다. 레넥톤은 본능적으로 앞으로 튀어나가며 숲을 가로지르는 길을 힘껏 박차고 달려 내려간다. 벌어진 길쭉한 주둥이에 잔뜩 나 있는 날카로운 이에서는 먹이를 기대하듯 침이 흘러 떨어진다. 피가 끓어오르며 우람한 두 팔에 혈관이 불끈 솟아, 거미줄처럼 툭툭 번져간다.

모퉁이를 돌자, 쓸모 없는 미니언 무리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나서스의 모습이 보인다. 빛나는 황금빛 갑옷을 걸친 형은 사뭇 능숙하게 머리 위로 지팡이를 휙휙 휘둘러 미니언들에게 영혼의 불길 세례를 내리고 있다. 나서스가 부리는 마법의 힘에 지축이 뒤흔들리며, 눈부시게 일렁이는 마법의 불꽃이 조그만 피조물들을 불태워 버린다.

하지만 레넥톤의 눈에는 이 모든 게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심판의 대상만 보일 뿐이다.

레넥톤은 귀찮게 막고 서 있는 운 나쁜 미니언을 죄다 도륙하며 나서스에게 덮쳐든다. 오랫동안 못 보고 지내던 동생이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알아채지 못하던 나서스는, 자기 목을 노리고 날아든 거대한 곡선형 검이 허공을 가르자 그제서야 간발의 차로 공격을 피해 사라진다. 섬광을 발하며 사라진 나서스가 이내 안전한 거리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레넥톤?!”

거대한 검을 휘두르며 돌진해 오는 레넥톤의 일격을 지팡이로 막아낸 나서스는 레넥톤의 가차 없는 공격에 차츰 뒤로 밀려난다.

“형제여, 그만! 도대체 여기서 뭘하는 건가?”

레넥톤의 얼굴에 능글맞은 미소가 번진다.

“학살이지!”

말을 그치기가 무섭게 몸을 웅크리더니, 전광석화처럼 몸을 날린다. 창공에서 빙빙 돌며 춤을 추는 곡선형 칼날이 흉포한 호를 그린다. 이번엔 틀림 없이 살을 베었다는 확실한 감각이 전해져 온다. 나서스의 몸이 털썩, 땅으로 쓰러지며 레넥톤은 형의 목숨을 제 손으로 끊을 이 최후의 순간을 음미하며 그 위로 우뚝 선다.

돌연, 빛 줄기가 비추더니 나서스의 몸이 사라진다.

레넥톤은 방금까지 나서스가 있던 그 자리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미친 듯이 찢어 발긴다. 분노에 가득 차 돌아보지만 주위를 둘러싼 숲에는 아무도 없다. 그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 오르는 포효를 내지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서스의 냄새를 다시 포착한 레넥톤은 길을 따라 온 힘을 다해 달려 나간다. 저 멀리, 아까와 비슷해 보이는 석조 단상에 서 있는 나서스가 보인다. 그를 향해 거침없이 돌격하는 입가에서 분노의 포효가 흘러나온다. 갑자기 살벌한 무기를 든 엄숙한 표정의 수호자 세 명이 계단 꼭대기의 위압적인 탑 밑에 나타나 그를 막아 선다.

레넥톤은 건강미 넘치는 빨강 머리 여인이 자신을 향해 발사하는 총알을 칼날로 막아내며 거침없이 돌진한다. 우람한 미노타우로스가 지면을 쿵 내리치고, 별나게 커다란 아르마딜로가 그를 막아내려 네 발로 버티고 서지만, 피의 갈망에 사로잡힌 악어의 적수가 되기엔 무리다. 결국 나서스에게 돌진하는 레넥톤에게 밀려 세 명의 수호자가 모두 나가 떨어진다.

이제 야수는 질주하던 탄력을 받아 날 듯이 계단을 뛰어올라 단상을 덮친다. 그리고 나서스가 아우를 막으려는 듯 한 손을 들어 제지하는 순간, 어디선지 눈부신 빛 줄기가 뿜어져 나와 레넥톤의 몸이 고통스러운 화염에 휩싸인다. 곧바로 레넥톤은 어둠 속에 쓰러진다.

야수는 싸늘한 돌 바닥에 큰 대자로 뻗은 채 정신을 차린다. 두건을 쓴 마법사 여럿이 손을 쭉 내민 채 둥그렇게 그를 에워싸고 있다. 그들이 웅얼거리는 이상한 단어들이 빛나는 마법의 그물을 짜 내려가 레넥톤의 몸을 단단히 속박하고 있다. 시야가 환해지자, 방 건너편에서 냉정한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나서스의 모습이 보인다. 레넥톤이 으르렁대며 형을 덮치려 하지만, 마법의 사슬이 강력하게 옭아매고 있어 꼼짝도 할 수가 없다. 나서스는 도무지 속마음을 읽어낼 수 없는 표정으로 오랫동안 레넥톤을 지켜본다. 얼마간의 시간의 흘렀을까. 나서스는 곧 돌아서서 빛의 제단으로 올라선다.

나서스는 이렇게 말하더니 이내 사라진다.

“아직 우리의 갈등을 해결하기엔 이른 것 같군. 잘 있게, 형제여.”

레넥톤이 고개를 뒤로 홱 젖히며 포효를 내지르자 온 방이 뒤흔들린다. 형이 지척에 있다는 맹렬한 분노와 그런데도 제 손으로 끝장내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그를 집어삼킨다. 빙 둘러싸고 선 소환사들은 이 피조물에게 통상적인 질문조차 던지지 않는다. 리그가 선택한 존재가 마침내 이 곳에 도래했기에.


연관 페이지